오늘의 저편 <150>
오늘의 저편 <150>
  • 경남일보
  • 승인 2012.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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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덜도 아닌 딱 이 물 한 동이 뿐이다!’

.물동이를 머리에 인 화성댁은 딸네로 가지 않고 나환자 부부가 있는 그 집으로 방향을 잡으며 자신에게 주입하듯 중얼거렸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물을 이고 들어오는 화성댁을 본 남자는 저만치 서서 감사의 눈물을 글썽였다.

산파의 역할만 남자에게 간단하게 말해 준 화성댁은 바로 그들 곁에서 나왔다.

“아이고 배야, 어머니 아기가 나오려나 봐요.”

화성댁을 본 민숙은 엉거주춤 일어나며 엄살을 부렸다.

“아니, 여태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었던 게야?”

손에 들고 있던 빈 물통을 땅에 내려놓은 화성댁은 서둘러 딸을 부축했다.

저녁을 먹으러 산을 내려온 진석은 텅 빈 집에서 초조히 서성이고 있었다. 바깥소식을 모르고 있어도 서울이 사흘 만에 함락된 판국에 칠월 하순인 지금 수원이 적군의 수중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었다.

학동은 수원 시내에서는 많이 떨어진 시골마을이었다. 그렇더라도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지지대고개를 거쳐야만 했다. 그러므로 지지대고개 안쪽에 위치한 학동은 위험요소를 많이 안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몸을 해 가지고 어디 갔다 오니? 아니, 왜 그러니?”

조용히 열리는 대문 사이로 민숙의 얼굴이 먼저 들어오자 진석은 반색하며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린 것이었다. 두근거리는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피하여 달아나듯 뒷산으로 몸을 돌렸다.

“물 길러 갔다가 얘가 진통을 시작하는 바람에??.”

화성댁은 변명하듯 말하며 민숙을 방으로 데려갔다.

“오빠 가지 말아요.”

진석의 마음을 바로 읽어버린 민숙은 애원하듯 말했다.

“아니네. 굴속으로 가 있게. 여자가 아일 낳는데 남정네가 붙어있어서 되겠나?”

진석이가 민숙이 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이 아닌데도 화성댁은 딱 잘라 말했다. 그녀는 새 생명이 태어나는 공간에 나환자를 있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뒷방에 있으면 되잖아요?”

민숙은 화성댁과 진석을 번갈아 보며 항의하듯 말했다.

“가 있게. 아일 낳으면 바로 알려줄 테니.”

“안 돼요. 가지 말아욧!”

민숙은 쥐어짜듯 아파오는 아랫배를 부둥켜안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진석은 뒤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밖으로 나갔다.

“이년아, 예서 아일 낳을 테냐? 빨리 방으로 가자.”

화성댁은 민숙을 반강제로 방안에 떠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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