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예찬
야구 예찬
  • 경남일보
  • 승인 2012.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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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철 (한국국제대 홍보실장)
국민스포츠 야구가 올해 역시 만원 관중의 열기로 그라운드 속 다이아몬드가 그 빛처럼 한창 뜨겁다. 이젠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를 넘어 야구선수의 일생을 조명하기에 이르렀으니, 프로야구 30년 나이테가 이렇게 또렷하게 아로새겨진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열혈 광팬이 많은 야구는 그만큼 예찬론도 각양각색에다 피그말리온의 그것처럼 순정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통계의 스포츠, 정중동의 긴장감, 재밌는 응원전, 포지션의 확연한 분업화 등 제각각 홈을 파고드는 주자마냥 앞 다퉈 사자후를 내뿜고, 나름의 논리도 3할 타자마냥 정확하고 치밀하다.

30년 광팬으로서 가장 공감이 가는 예찬론은 ‘인간적이다’는 것이다. 야구를 제외한 어떤 구기종목도 공이 아닌 사람이 들어와야만 점수가 나는 스포츠는 없다. 미식축구나 럭비와는 달리 사람만이 득점원이 된다. 이처럼 야구는 인간중심적이다.

또 한 가지 인간적인 것은 ‘삼세번’의 기회와 관용이다. 타자에게는 한 타석에 스트라이크 3번의 기회를 가지며 또한 세 번의 타석 중 한 번만 안타를 쳐도 최고 반열의 선수로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다. 아니 열 번 가운데 세 번만 쳐도 된다. 투수도 마찬가지이다. 선발투수가 풀 시즌을 뛸 경우 세 번 중 한 번만 승리해도 10승 투수가 가능하다. 이 얼마나 기회와 관용이 베풀어지는 스포츠인가.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아도 각광받을 수 있는 스포츠, 아니 스포츠만이 아니라 인간사 무엇에 이런 관용 어린 룰이 존재한단 말인가.

그리고 야구는 평등하다. 특히 야구는 신체조건에도 관대한 편이다. 키가 무진장 작아도 타격왕과 도루왕이 될 수 있고, 무진장 뚱뚱해서 잘 뛰지 못해도 홈런왕과 타점왕을 노릴 수 있다. 우리나라엔 청각장애인 고교야구팀이 화제가 돼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메이저리그엔 손가락 몇 개가 없는 투수도 있었다. 최근에는 165㎝의 단신선수의 맹활약과 부상으로 팔 인대가 없는 투수가 너클볼러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만큼 타고난 신체조건의 제약이 적고, 역경을 이겨낸 선수들의 성공담과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많이 연출된다.

올해 프로야구는 최단 경기수 관중 500만명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사상 첫 관중 700만을 셈하면서 그 인기는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통속하리만큼 절정이다. 따라서 이제 그 속에 내재된 군부독재의 정치적 도구라는 태생적 한계도, 런던올림픽도 흥행 열기를 식히지 못한다. 더 이상 민머리 대통령을 야구와 합체하려는 세러모니는 공허하고 부질없다. 30년 이전에도 야구는 열광적이었고, 30년이 지난 지금, 야구에 정치는 오버랩되지 않는다. 다만 그 인기에 영합하려는 정치만이 주변을 맴돌 뿐이다.

방성철 (한국국제대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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