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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벽에 지붕 하나, 부처들면 불국이라(30) 상운암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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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8.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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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운암

등줄기를 볶아대는 불볕더위의 기승이 연일 만만치 않은데 계속되는 열대야까지 덩달아서 위세를 부리는 바람에 밤잠까지 설치니 일상의 버거움과 마음까지 고단해져 생기를 잃고 늘어지기 십상이라 처진 몸도 추스르고 마음도 다잡을 겸해서 시원한 폭포가 있고 호젓한 산사가 있는 운문산을 찾아서 길을 나섰다.

밀양ic에서 차를 내려서 울산 언양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따라서 얼음골 방향으로 가다보면 4차선도로 확장공사가 한창이라서 새 도로 굴다리 밑으로 좌회전을 하라는 석골사 안내표지판이 얼른 눈에 띄지 않아 어수룩하게 섰다.

좁다란 길을 사이에 두고 온통 사과밭이 지천인데 아직은 새파랗기만한 주먹만한 사과가 가지마다 옹골차게 열어 뙤약볕을 한 가득씩 끌어안고 얼음골 사과로 영글어가고 있다. 풋내 나는 과수원길을 지나 마을길을 잠시 오르면 작은 주차장이 마련돼 있어 차를 세우는 순간부터 눈과 귀를 놀라게 하는 우람한 폭포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게 굉음을 내면서 줄기차게 쏟아져 내리며 세속에서 묻은 때부터 씻으라고 폭포 아래로 끌어당긴다.

주차장 축대를 내려서면 폭포물이 떨어져 소를 이루고 물빛이 맑아서 바닥까지 훤하게 보이지만 안쪽으로는 수심이 꽤나 깊은지 시퍼렇게 짙은 데도 맑기만 하니 이를 두고 명경지수라 했던가. 바윗돌에 서서 한참을 보노라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는 세속에 찌든 때를 씻어 내리고 육신의 그림자는 소에 잠기어 마음이 씻긴다.   

폭포의 상단은 한 면을 부딪쳤다가 떨어져 내리는데 수 만개의 물방울은 하얀 은구슬을 쏟아붓는 듯하고 사정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는 승천을 하려는 백룡이 암벽을 타고 한사코 기어오르는 것만 같아서 발길을 돌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폭포를 옆에 끼고 석골사 돌계단이 작은 계곡의 다리 건너편에 빤하게 보이는데 녹음 짙은 소목 사이의 기와지붕은 들창바위가 내려다보는 올망졸망한 바윗돌 사이사이로 흐르는 물줄기의 조잘거리는 소리를 깔고, 파란 이끼가 낀 작은 다리 건너편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솟아오른 틈새마다 아름드리 나무를 사이에 두고 자연석 층층계단과 어우러져 속세를 벗어난 천년도량의 역사 속으로 끌어당긴다.

일주문도 없고 천왕문도 없다. 법이 없어 문이 없는 것인지 문이 없어 법이 없는 것인지 수만금을 드린 위압적인 문보다야 훨씬 마음이 편하니 이를 두고 무상심심미묘법이라 하셨던가.

돌계단을 오르면 극락전 뜨락이다. 덩그렇게 높이 솟은 극락전 옆으로 요사체가 정갈하게 마련돼 있어 산사의 여느 절집이나 별다른 게 없고 석탑도 석등도 오랜 것이 없어 천년고찰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으나 울타리 아래에 괴어둔 석편은 커다란 석탑의 옥개석인 듯하고 구름무늬가 선명한 석편은 그 용처를 가늠할 수가 없다. 본존불 앞에 예를 갖추고 돌계단을 내려서니까 폭포수는 뇌성 같은 소리를 내며 자잘한 소리들일랑 듣지를 말라 하며 오욕의 유혹을 멀리하란다.

주지 도심 스님의 말을 따라 절 뒤편의 산길을 가면 석골사의 암자 상운암이 있다하여 발치 끝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자분자분 밟으면서 숲길을 쉬엄쉬엄 걸었다. 물소리, 산새소리, 매미소리가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뒤섞여서 편안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온갖 잡생각들을 말끔하게 씻어준다.

수목 사이로 건너다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희끗희끗한 바위들이 산봉우리마다 웅장하고 장엄하게 솟아있다. 얼핏 보면 엇비슷하지만 눈여겨보면 그 형상이 가지각색으로 기기묘묘한데 바위 틈새에 선 나무는 하나 같이 소나무다. 어쩌다 저리 험한 곳에 뿌리를 내려 수백 년 세월이 흐른 것 같건만 하늘 높이 솟아보지도 못하고 뒤틀리고 앵돌아져서 몸통만 굵어졌단 말인가. 그래도 고고하게 살아야 했기에 가지를 활짝 펴고 한껏 푸르렀다. 영락없는 병풍 속의 독야청청 노송도다.   

 

▲왼쪽부터 석골사 입구, 석골폭포, 돌탑들.


한참을 가다보니 원줄기의 계곡은 아닌 듯한 또 하나의 계곡이 널따랗게 자리를 마련하고 길손을 반긴다. 세월에 닳고 물에 씻기어서 반들반들한 바윗돌들이 제마다 자리를 내어주며 서로 앉으라고 바짓가랑이를 잡아끈다. 바윗돌을 깔고 앉아 흐르는 물에 손을 담갔다. 깜짝 놀랄 만큼 찬 얼음물이다. 그래서 석골의 또 다른 이름이 제2얼음골이라 했던가!

계곡을 건너서자 갑자기 급경사였다. 바위틈 사이로 오를 때는 매듭을 지운 밧줄을 잡아당기며 올라야 했고 바위의 옆면을 돌아가는 길에는 안전난간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길을 잘못 들었나 하고 뒤를 돌아봐도 그 어디에도 갈림길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어딘가의 끄트머리에 작은 암자가 있겠지 하고 걷기도 하고 기어오르기를 원 없이 했다 싶었는데 이정표를 만났다.

올라온 길은 1.4km이고 상운암 2.3km, 운문산 3.1 km라며 가야할 길을 알리고 섰다. 뒤돌아서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먼 길을 왔고 앞으로 나아가자니 까마득한 길이다. 그나저나 암자에는 스님 한 분이 계신다 했는데 도대체 생필품은 어떻게 조달을 하며 산단 말인가? 스님이 굶지는 않는지 걱정도 되면서 설마 이내 평지가 나오겠지 했건만 갈수록 태산이다. 바위 틈새를 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바위가 코앞에 닿아 있어서 사다리를 타듯하고 더러는 다래덩굴에 매달려서 속절없는 밀림 속의 타잔이 되기도 했다.

수십 길 낭떠러지가 아름드리 나무에 가려져 아찔아찔한 기분은 아니지만 기암괴석의 계곡은 영락없는 협곡이고 경사가 급하다 보니 층층이 폭포이다. 비룡폭포, 천상폭포, 선녀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가 층층이 이어져 있고 그 모양새도 가지각색이어서 보는 이의 넋을 뺀다.

숨겨놓은 비경은 누구의 소작이며

끊어질듯 이어지는 길은 누구와의 연이던가.

끊어볼까 이어볼까 마음 둘 곳 없어서

이토록 외진 길을 실낱 같이 이었나.

기암괴석의 틈새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온갖 형상을 한 크고 작은 바위들이 낭떠러지 아래에서는 치어다보고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데 이를 어쩌나! 얼룩얼룩한 무늬의 영락없는 호랑이었다. 빽! 하고 소리라도 해야지 하고 “우리 같은 서민들은 수입산 불량식품에다 가짜에다 날 지난 식품까지 이리 속고 저리 속으며 이날까지 먹었다” 했더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끼 낀 바위로 변해 버린다.

고산준령에는 산새도 날개를 접었는지 새소리 하나 없고 쫄랑거리며 앞장서서 가던 다람쥐가 없어지더니 또 다른 녀석이 꼬리를 짊어지고 쪼르르 앞선다. 가도가도 구만리라 했던가, 너덜겅을 만나자 돌탑군락지가 내려다보고 섰다. 아하, 이제야 상운암이 가까운 모양이다. 속세의 연을 돌무더기에 묻으려고 미운 정 넣고 돌 하나 올리고 고은 정 넣고 돌 하나 눌러서 망각 한 줄 쌓고 세월 한 줄 쌓기를 얼마나 했으면 이리도 많은 돌탑을 쌓고 쌓았을까!

적막강산이 따로 없는 첩첩산중 고산준령을 기어이 올라선 운문산 상운암. 말 그대로 구름의 문을 열고 구름 위의 암자다. 석축을 쌓아서 터는 꽤나 널따란데 천년 세월의 옛 흔적은 간 곳 없고 슬레이트 오두막 한 채와 움막 같은 뱃집이 대웅전이요 요사채다.

석불처럼 서 있던 스님이 인기척을 알고 무척이도 반기는데 비구승의 법명도 ‘무척’ 이란다. 상추밭 한가운데로 길게 누운 바윗돌이 예사롭지 않아 기웃거렸더니 한반도 모형 그대로였다. 백두대간까지 또렷하다며 설명하던 무척 스님은 허기졌을 게라며 밥을 지을 테니 한사코 먹고 가라는데 쌀 한 줌 콩 한 톨 갖고 오르기도 버거운 길인데 물 한 모금 먹기도 미안한 것을 이를 어쩌나. 호신불 크기의 작은 본존불 앞에 헌향의 예를 올리니 실오라기 같은 향불의 연기가 아귀가 맞지 않아 열려진 문밖으로 아물아물 흘러서 사바세계로 흩어져 간다.

▲운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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