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공자의 탄식>
이준의 역학이야기 <공자의 탄식>
  • 경남일보
  • 승인 2012.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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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占而已矣
공자님의 출생과 성장배경, 학문과 정치적 행보, 그리고 인생을 쉼 없이 줄기차게 완성시켜 나가는 각고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정말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마땅한 스승도, 괄목할만한 인맥과 집안배경도, 삐까뻔쩍한 학벌도, 화려한 스펙도 없었던 공자는 오로지 자기보다 500여 년 전에 태어난 주공(周公)을 인생의 본보기(role model)로 삼아 스스로 증진하고 노력하였을 따름이었다. 그런 공자님도 삶의 여정에서 마음고생이 심하였던지 때때로 탄식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그런 탄식 중에 ‘아! 이토록 오랫동안 꿈에 주공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 늙었나 보구나!(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논어, 술이, 5)’, ‘점을 치지 않는지가 이미 오래 되었구나!(不占而已矣, 논어, 자로, 22)’라는 구절이 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 ‘부점이이의(不占而已矣)’이다.

이를 번역한 것들이 너무나 다양하고 때로는 황당한 면도 있기에 이 기회를 빌어 공자님이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주역의 내용에서 그 뜻을 살펴보려고 한다. 예컨대 ‘점을 치지 않더라도 덕을 변함없이 지키지 못하면 모욕당하리란 사실을 잘 알 수 있다는 뜻(동아일보, 2009,10,6)’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지 아둔한 필자로서는 통 알 수가 없다. 국내 유명대학의 한문학과 교수님의 해석이란다. 대개 이런 류의 해석에는 다음과 같은 인식이 깔려있다. 첫째, 점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미신이고 나쁜 것이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변함없는 덕을 가진 사람은 점을 칠 필요가 없다. 더더구나 사주팔자 같은 미신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둘째, 항덕(恒德)이란 사람의 마음 씀으로서 다른 사람과 만물에 미치는 변함없는 덕성이다. 하지만 논어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역의 32번째 괘 뇌풍항(雷風恒)의 항덕은 천지의 변화, 사시사철에 따라 항상 달라지는 사람들의 이해관계, 이해관계에 달린 민심의 동향을 늘 살피고, 학습과 교육을 게을리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 백성들에 대한 세금을 줄여서 항상 덕치를 행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성왕, 강숙 등에게 주공, 소공이 끈질기게 가르치는 구체적인 내용이다. 따라서 항덕이란 도통 무슨 말인지도 모를 고상하고 추상적인 구름에 붕 뜬소리가 아니다. 이익이 생기는 곳이라면 사람들은 어느 곳이든 달려가고, 세금을 부당하게 징수하면 아무리 권력의 서슬이 시퍼렇더라도 사람들은 들고 일어나 저항한다. 공직자는 이런 수치(羞恥)를 조심하라. 이것이 항덕의 내용이다. 오늘날로 치면 지속적인 교육과 감세정책이다. 이런 내용을 앞의 번역처럼 무슨 변함없는 덕이니 하는 고상한 말들로써 겁나게 과대포장을 해버리니 주역이 점점 요상한 책으로 되어버리고, 사람들이 잘 읽지 않게 되고, 그 내용도 현실문제에서 한참 벗어나 버린다.

다음으로 점치는 부분이다. 점이란 의사결정 및 정책결정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건한 과정이다. 이순신 장군도 점을 쳤다. 어떤 결정에서든 결정자는 고독하다. 어떤 사업에 투자할까 말까, 전쟁에서 이길까 질까하는 중대한 결정에서는 더욱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 하여 어떤 초월적 존재에게 묻고 싶고 또 이렇게 묻는 것이 점이다. 이런 결정의 절차적 과정을 말해주는 것이 주역 57번째 손위풍(巽爲風)의 구이이다. 손괘 구이는 손재상하(巽在牀下), 용사무분약길(用史巫紛若吉), 무구(无咎)이다. 손(巽)은 순종하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의 예절법도로 윗사람은 상(床)위에 앉고, 아랫사람은 상 아래에서 절을 한다. 여기서 재상하(在牀下)는 아래 사람이 상 아래에서 절을 하듯 무슨 일을 결정할 때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겸손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즉 어떤 욕심, 분노, 갈등, 편견, 선입견,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 인맥, 교만, 고집 등을 모두 비우고 해맑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관(史官)들이 수집한 역사적 사례 및 현실 조사 자료들을 살펴보고(선례탐색 및 벤치마킹), 분석·해석·판단한다. 그리고 무당이 친 거북점에 나타난 다양한 무늬들을 조합하여 미래를 조망하고(미래 예측, 브레인 스토밍 등의 방식), 마지막으로 모든 신료(공무원)들 및 백성들과 소통하여 형성된 여론을 바탕으로 일을 도모하면 좋게 되고(吉) 허물이 없다(无咎). 이 때 점을 먼저 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선례와 현실 사례들을 먼저 검토하고, 그 다음으로 점을 친다는 순서에 유의하여야 한다.

이렇게 신중하여야 할 의사결정과정의 점치는 경건한 절차가 어느 때 부터인지 없어져 버린 것에 대하여 공자님은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에 우리는 신령스런 거북껍질을 구하여 점을 칠 수는 없지만,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본인의 천지운기를 담은 사주팔자 정도는 반드시 참조하여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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