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51>
오늘의 저편 <151>
  • 경남일보
  • 승인 2012.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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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오빠 못 가게 하세요.”

“김 서방이 어디 죽으러 가니?”

화성댁은 이렇게 불쑥 말해 버렸다. 뱃속에 품고 있던 새 생명을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이던가. 하늘이 노래졌다 하얘졌다 하는 고통을 겪고 또 겪다가 이젠 진짜 죽는구나 하는 순간에야 아이가 세상으로 쑥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이런 판국에 제 걱정은 하지 않고 남편만 챙기는 딸년이 너무 얄미워서 그런 것이었다.

“예. 어머니. 제가 아일 낳는 대로 오빠는 죽을 거예요.”

기어이 민숙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뭐, 뭐라고? 허, 허허허??. 못 죽어서 산 것이 아니고 죽을 날 받아놓고 산 거였어?”

화성댁은 실성한 사람처럼 히죽히죽 웃어댔다. 비로소 딸년과 사위 사이에 지랄개떡 같은 짬짜미가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예, 어머니. 오빠 뒷방에서 지내게 해야 해요.”

화성댁의 팔을 붙들고 늘어지던 민숙은 그 팔을 뿌리치듯 놓곤 대문 밖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갔다.

“이년아, 길에서 애 낳고 싶으냐?”

초산인 데다가 이제 막 진통을 시작한 터여서 아이가 세상에 얼굴을 내밀려면 아직도 멀었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화성댁은 억지소릴 하며 딸을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어머니, 오빠 살려줘요.”

또 진통이 오는지 죽을상이 된 민숙은 그 자리에 주저앉지도 바로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네 년 방으로 들어가는 걸 봐야 사윈지 웬순지를 끌고 올 거 아니냐?”

화성댁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바드득 갈았다. 무작정 왜 독한 마음이 생기는지 그녀로서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진석은 한사코 집 쪽으로 돌아가는 목을 산으로 끌어가며 울음을 꿀꺽 삼켰다.

‘죽는 것이 뭐가 그리 급하다고??.’

뒷산으로 올라가는 화성댁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시야에 들어오는 소나무 한 그루를 보며 진석은 의미 있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죽을 놈은 빨리 죽어야 해.’

한이 서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화성댁은 싸늘한 미소를 빼물었다. 발걸음이 느려졌다.

숨어 지내던 그 굴속으로 들어간 진석은 민숙이 몰래 준비해 두었던 밧줄을 들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래. 아비가 자식을 위해 죽겠다는데 누가 말리겠어? 어디 그것뿐인가? 여자도 두 번 세 번 결혼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민숙이 년을 위해서도 자넨 그러는 편이 백 번 나아.’

진석의 죽음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화성댁의 발걸음이 별안간 빨라졌다. 사위 놈만 죽고 나면 꼬일 대로 꼬인 딸년의 팔자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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