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받지 말자"
"열받지 말자"
  • 경남일보
  • 승인 2012.08.0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규석 (전 언론인)
정말 덥다. '폭염', '가마솥더위', '찜통더위', '열대야', '푹푹 찐다'는 글이나 말로는 모자랄 것 같은 더위다. 수령 200여년의 느티나무 그늘 밑에 앉아 있어도 땀은 쉴새없이 흘러내리고 마을회관에서는 "더울 때도 안 켜려면 에어컨은 왜 갖다 놨느냐", "사람 몇명 안 모였는데 에어컨을 가동하면 전기료를 감당하겠느냐"는 할머니들의 실랑이가 끊이질 않는다. 무더위에는 몸도 지치지만 마음도 쉽게 메마르는 것인까? 요즘은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날 때가 많다.

서울에서 진주로 오는 버스에서는 쉴새없이 큰소리로 전화를 하는 앞자리의 아주머니 때문에 짜증이 났다. 또 진주중앙시장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는 버스도착 안내시스템 전자판에 '000번 4분후 도착'이라는 글이 게재되고 40분이 지나서야 000번 버스가 도착하는데 화가 났다. 영문 모르는 버스기사에게 한 아주머니가 "4분이라고 안 적혔으면 어디 가서 쉬다가 탈을 것 아니냐"고 고함을 질렀다.

얼마 전 저녁 가끔 들러 초밥을 사 먹었던 진주의 일식집에 갔을 때다. 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자마자 주인이자 주방장인 남자가 "오늘은 초밥 안됩니다" 라고 했다. '초밥 1인분' 손님으로 매상에 별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던 주인이 단체손님으로 바쁜 때에 찾아온 나를 못마땅하게 본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일식집의 초밥이 좋다고 손님 2명과 약속을 해 놓은 터여서 발을 돌릴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1인분 1만5000원인 초밥 대신 1인당 3만5000원인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돈도 돈이지만 양이 많아 부담되는 저녁을 먹은 불쾌한 마음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오후 2시께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진주시 지수면의 어느 식당에 들어가자 돼지다리에 칼질을 하고 있던 식당주인은 다짜고짜 "1인분은 안됩니다"며 내쫓았다. 진주중앙시장 노점 과일상에서 산 복숭아 가운데 상처난 것이 많은 것을 뒤늦게 알고 화가 났는데, 그 과일상이 그후에도 상처난 과일 대신 성한 것을 골라 플라스틱 바구니 위쪽에 놓느라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짜증이 났다.

진주시 반성의 버스주차장 빈터에서 남녀 중고생이 모여 담배를 피우면서 욕설이 대부분인 대화를 하는데도 용기가 없어 나무라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다. 무더위 탓인지 아내에게도 말을 거칠게 해 결국 내가 질 수밖에 없는 부부싸움을 유발할 때도 많다. 무더위는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니니 화는 스스로 삭힐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짜증을 내봐야 자시만 손해인데. 좋지 않은 일보다 좋은 일을 생각하면서 더위를 이겨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대한의 건아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깜짝 놀랄 성과를 내는 올림픽으로 더위를 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 명문대에 다니면서 중풍에 걸린 어머니를 돌볼 수 있는 여름이 끝나 가는 것이 안타깝다는 우리 마을의 딸을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도 마음의 피서 아닐까. 머지않아 물러갈 수밖에 없는 더위 탓으로 자신의 못남을 덮어서는 안될 것 같다.

더위에 죄가 있는것이 아니라 걸핏하면 화를 내는 자신이 못난 것이다. 더위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다짐해 본다.

/전 언론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