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식 (진주 선학초등학교 교장)
다음 단계는 아마도 신체적인 홀로서기일 것이다. 이 경우에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시간적으로는 기다리고, 공간적으로는 거리두기가 잘 실천된다. 돌 지난 아이를 보고 “너 나이가 몇인데 아직 걷지도 못하느냐?”, “옆집 돌이는 돌 때부터 걸었는데, 너는?”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몇 번을 넘어지더라고 “잘 한다”, “조금만 더하면 걸을 수 있다”는 격려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기다려 준다.
또한 곧 넘어질 듯 뒤뚱거리면서 걷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것이 아니라 저만치 앞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아이를 쳐다보며 웃고, 박수치고, 큰소리로 격려하면서 스스로 걸어오도록 기다린다. 이와 같은 시간적인 기다림과 공간적인 거리두기는 아이가 커 갈수록 점점 더 길어지고 멀어져서 종래는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부모의 불안심리가 작동되어 수년 간 이어질 잔소리가 시작된다.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소리도 잔소리가 아니라 큰 생각을 낳을 수 있는 큰소리가 낫지 않을까. 자주 할 것을 어느 시점에 한 번, 한참을 기다리다가 정말로 지금 이 순간이 말할 시기라고 생각될 때 한번에 큰소리로 얘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자연에서는 무엇이든 제대로 튼튼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비바람, 눈보라, 사철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재되어 있던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인간의 정신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성장한다. 이러한 정신적 성장과정을 통해 홀로서기를 도우는 것이 교육의 역할일 것이다.
교사나 부모는 우리 아이가 뒤처진다는 불안심리에서 아이의 머리는 잡다한 지식으로 채우고, 아이의 시간은 이런저런 활동으로 가득 채우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자연의 질서에서 배우듯이 여유를 갖고 기다리면 아름답게 필 수 있는 것을 서둘러 피우려다가 아동이 갖고 있는 본래의 귀한 보물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이다. 정신적인 홀로서기 역시 기다려주는 여유 속에서 창의력이 싹트고, 거리두기를 통해 스스로 하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고 어려운 일을 극복해 정신적으로 성숙하면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독립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정호식 (진주 선학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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