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55>
오늘의 저편 <155>
  • 경남일보
  • 승인 2012.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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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숙아, 일단 아기를 보살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진석은 아기가 너무 조용하게 있어서 은근히 마음이 쓰였다.

 “이년아, 그 아인 문둥병자 새끼다.”

 딸이 아기를 안으려고 하자 급기야 화성댁은 입에 거품을 물었다.

 “예엣!”

 민숙이가 아기에게서 떨어지며 노랗게 질렸다.

 “아니 장모님!”

 진석은 뒷머리가 멍해져 옴을 느끼며 눈을 감아버렸다. 머릿속은 쉬이 정리되지 않고 있는데 속귀 깊은 곳에선 ‘문둥병자 새끼다’라고 하던 화성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또다시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대문 밖에서 나는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빨리 가서 네 아기 젖 물려라.”

 화성댁이 대문을 닫아걸며 민숙에게 명령했다. 자기변호라도 하듯 떠돌이 나환자 부부한테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었다고 혼잣말로 구두덜거렸다.

 민숙이는 귀를 막으며 몸을 안으로 돌렸다.

 ‘저 아이가 문둥병자 자식이면 우리 아들은 뭔가? 반쪽 문둥이 자식일까?’  

 무서운 얼굴로 돌변한 진석은 달아나듯 뒷마당으로 가 버렸다.

 차마 마루로 올라서지 못한 민숙은 몸을 대문 쪽으로 돌렸다. 

 뒷방으로 쑥 들어가지 못한 진석이도 몸을 대문 쪽으로 돌렸다. 

 “그래가지고 험한 세상 잘도 살아가겠다!” 화성댁도 더는 딸 내외를 만류하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배가 무지 고픈가 봐요.”

 입술을 들썩이며 우는 아기를 보며 민숙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진석을 향하여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아기는 미감아야. 젖을 물려도 괜찮단 말이야.’  

 그녀의 가슴에서 부르짖는 소리였다.  

 ‘안될 말이다. 나병환자가 낳은 아기야. 그 몸 구석구석에 나균이 붙어 있을 거란 말이다.’

 머리에서 싸늘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나균은 공기 중에 나오면 3분 이내에 죽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재수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져.’

민숙은 체머리를 흔들었다.

 아이에게 성큼 다가가 포대기에 꽂혀 있는 쪽지를 빼내 든 진석은 다 읽기도 전에 꺽꺽 느껴 울기 시작했다.

 ‘베풀어 주신 은혜 갚지도 못한 채 이렇게 죄송한 부탁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아기를 키울 형편이 못됩니다. 가까운 절에 데려다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부부 몹쓸 병에 걸린 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절대로 아기를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튼 태어난 아기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죄 많은 부모지만 아기 이름은 지어놓고 떠납니다. ’강건희‘ 거듭 부탁드립니다. 가여운 저희 건희를 가까운 절에 꼭 좀 맡겨주십시오. 손가락질당하고 멸시당해 마땅한 저희에게 큰 은혜를 주신 할머니, 성함도 모르는 채 이렇게 떠납니다. 생명이 붙어 있는 동안은 늘 기원 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세요.’ 쪽지의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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