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시선 아닌 자신의 고통으로"
"타자의 시선 아닌 자신의 고통으로"
  • 연합뉴스
  • 승인 2012.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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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자의 눈으로 본 '두 개의 문'

 

"이제 비로소 집에 돌아온 느낌입니다."

8일 저녁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77개의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을 보며 김일란 감독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날 행사는 김 감독이 속한 다큐멘터리 제작그룹 '연분홍 치마'가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언니네트워크 등의 도움을 받아 연 영화 '두 개의 문' 상영회.

연출을 맡은 김 감독은 "'두 개의 문'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가장 적확한 언어를 골라 영화에 주석을 달아 준 사람들이 바로 여성주의 가치를 오래 공유해 온 친구들"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두 개의 문'은 성매매·성소수자 등에 시선을 보내온 김일란·홍지유 감독이 2009년 용산 참사에 대한 기록을 담아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다.

지난 6월 21일 개봉한 후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관객수 7만을 넘어서며 사회적 파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상영회는 '두 개의 문'이 화제의 중심에 섰지만 정작 제작 과정에서부터 지지를 보내준 여성주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없었다는 아쉬움에 시간을 쪼개 마련한 것이다.

100여 분간의 영화 상영 후 김 감독을 비롯한 패널들이 스크린 앞 무대에 등장하자 관객은 뜨거운 박수로 이들을 환영했다.

영화를 함께 만든 홍지유 감독은 다른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패널과 감독 사이에는 지지의 덕담이 오갔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평가에서만큼은 치밀하고 날카로웠다.

성소수자 공동행동 활동가 나영정 씨는 이 영화가 선악의 단순한 구도가 아닌 단일한 주체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를 보여준 점에서 여성주의 문법과 닮았다고 전했다.

"인상적인 것은 망루에 오른 철거민을 진압한 경찰의 목소리였어요. 위험한 상황인 줄 알면서도 일개 순경이었기 때문에 '작전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던 이의 증언이 인상적이었죠. 가해자 경찰·희생자 철거민이라는 구도 사이 사이에도 얼마나 복잡한 진실이 숨어있는지…. 이 문법이 남녀의 이분 구조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끊임없이 내보이려 했던 여성주의 담론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 이러한 영화의 '문법'에서 성소수자가 대중과의 소통을 모색하려면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고도 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공감을 호소하려면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참으로 고단한 일이지요. 그렇지만 다양한 층위의 진실을 보여준 이 영화가 호소력을 가졌듯 남녀의 견고한 구도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두 개의 문'의 시선은 성폭력 문제에 대해 여성주의자들이 호소하려던 바와 맥이 닿아있다고 했다.

그는 "'두 개의 문'은 관객이 마치 용산 참사의 현장 한복판에 던져진 것처럼 느끼게 하는 편집은 철거민의 입장을 타자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문제로 느끼는 장치를 마련했다"며 "성폭력 문제도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통 성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가해자 남성을 맹비난하고 피해자 여성을 불쌍히 여기는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지요. 이는 '당사자 의식'이 약하기 때문인데요. '이것은 내 문제'라는 자의식이 있어야 주먹구구식의 대책이 아닌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 있던 김 감독은 2005년 처녀작 '마마상'을 내놓았을 때 "감독의 자아 말고는 속이 텅 빈 영화"라는 동료의 평가를 떠올렸다.

그는 여성주의 커뮤니티에서 얻는 피드백을 통해 창작 과정에서의 또 다른 성찰과 고민을 시작한다고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재현의 방식'이라는 김 감독은 최근 여성학자 친구 권김현영이 트위터에 남긴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고 했다.

"울림은 선동이 아니라 시선과 입장의 변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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