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법 집행실태, 그 ‘불편한 진실’
환경법 집행실태, 그 ‘불편한 진실’
  • 경남일보
  • 승인 201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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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만 (환경부 기획조정실장)

영국 처칠 수상의 일화다. 원스턴 처칠이 의회에 늦자 신호위반을 지시했다. 교통경찰에게 적발된 운전기사가 “수상이 탄 차”라고 하자 경찰관은 뒷자리의 처칠을 보며 “처칠 수상 같은 분이 위반을 할 리 없다”면서 딱지를 뗐다. 처칠은 며칠 후 경찰관의 근무자세를 높이 평가하며 경시청장에게 특진을 지시했는데, 경시청장은 “경찰인사법에 특진규정이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영국이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법치국가 될 수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사례다.

이렇듯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돼야 할 엄격한 잣대이다.

우리나라 환경법은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고 있을까? 낙동강 유역 50%, 금강 유역 65.5%, 영산강 유역 57.1%. 금년 환경부와 검찰청이 합동으로 실시한 4대강 유역 배출업소 지도·단속 결과 나타난 환경법령 위반율이다. 환경법령 준수율이 50%도 채 안 되는 상황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환경법은 그 효력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빨간 신호등이 켜졌지만 차들이 멈추지 않는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는 헌법 제35조가 무색하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가장 큰 요인은 일부 기업인들의 환경에 대한 도덕적 해이(解弛)다. 환경문제는 특정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며, 그 피해도 장기간에 걸쳐서 서서히 나타나므로 소홀하기 쉽다. 특히 당장 눈 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일부 기업인들에게는 환경을 위한 ‘투자’가 불필요한 ‘비용’으로 여겨질 수 있다. 즉, 환경은 ‘모두’의 문제라서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둘째, 우리나라는 법 집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 관리체계가 취약하다. 미국의 경우 환경법 집행을 위한 체계가 탄탄하다. EPA에는 환경법 집행과 주정부, 지방정부 등 환경오염을 규제하는 다양한 집단의 활동을 지원·감시하는 법집행·훈련부(OCEFT)가 있다. 포괄적인 법 집행 및 수사권을 부여받은 특별수사관(special agent)을 지역사무국소에 배치·운영하는 등 규제대상 기관의 법규 준수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도 갖고 있다. 또한, 주정부의 환경법 집행의지 또는 집행능력이 부족할 경우 연방정부가 집행권을 도로 회수하는 부분선점제도(Partial pre-emption)도 운영중이다.

셋째, 국가기능의 지방이양도 한 원인이다. 지방화와 분권화의 시대적 흐름에서 중앙정부의 기능을 지방정부로 적절히 배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환경행정은 그 특수성을 고려하여야 한다. 미국의 경우 60년대 이전까지 지방정부에 규제기준 제정 및 집행권을 위임하는 등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였으나, 미약한 환경기준과 집행을 초래하여 환경이 더욱 악화되게 되었다. 이에 70년 이후에는 중앙집중적인 관리방식으로 전환한 바 있다.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지방정부의 환경행정 관리역량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환경보전업무의 지속적 증가와 주민의 쾌적한 환경욕구에 힘입어 지방환경조직도 확대·강화되고 있으나, 자치단체 스스로 환경정책을 결정·집행할 수 있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등 환경행정 집행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환경관리업무가 소위 3D업종으로 분류되어 공무원들이 근무를 기피하고 있으며, 지방공무원들이 선출직인 자치단체장으로 인해 오염물질 배출업소를 단속하는데 적극적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행정조직이 개발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환경정책의 우선순위가 개발정책보다 뒤처지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법령의 준수여부는 그 나라 국민의 의식수준과 사회발전의 정도를 말해주는 척도다. 법이 있으되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혼란과 불신을 초래해 더 이상의 발전이 어렵다. 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데도 선진국이 되려는 것은 마치 모래위에 성을 쌓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환경행정 기능 배분은 기능 수행주체의 적절성, 합리성,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선에서 이뤄져야 ‘행정실패’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 환경은 미래세대의 것을 잠시 빌려 쓰는 것이며, 한번 훼손된 환경은 치유하기 어렵다.

정연만 (환경부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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