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석달만에 2000만부…'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美서 석달만에 2000만부…'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 연합뉴스
  • 승인 201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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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살에, 아우디를 타고 나타나 피아노로 바흐가 편곡했다는 협주곡을 연주하는 잘생긴 남자를 만나서 반하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좋아하는 소설 초판본을(그것도 토머스 하디의 '테스' 초판본을!) 선물하고 개인 제트기를 타고 고향집에 간 나를 만나러 오는 남자라면 스물한살 아가씨가 돌다리 두드리며 주저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만 석달 만에 2100만부가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한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에서는 이런 아가씨가 '품위를 잃고 타락한 기분이 들도록 하는' 성적 관계를 요구하는 갑부 청년과 어디까지 내놓고 합의할 것인지를 놓고 분투한다.

힘이 빠져 물러서기 전까지는 전력질주하는 게 전부인 사랑 앞에서 작가는 마디마디 장애물을 걸쳐 놓고 얼마나 난이도 높은 허들까지 뛰어넘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탐색한다.

주인공이 앞뒤 재는 데 서툰 청춘남녀라는 것과, 청년의 요구가 옷 좀 예쁘게 입고 다니라거나 전업주부가 돼 달라는 차원을 훌쩍 넘어서는 설정만 봐도 작가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과 이를 실현하는 딴판의 방식을 끝까지 부딪혀 보겠다는 의도 같다.

노골적이고 반복적인 성애 묘사가 이 책에 '엄마들의 포르노(Mommy Porn)'라는 별칭을 붙여 폭발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하는 데 기여했지만 먼저 번역돼 나온 1-2권에서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밑바닥까지 탐구되지 못한 채 표면에서 꿰매지기 일쑤고 성애에 대한 기술(記述)도 일정한 테두리를 맴돈다.

9월까지 차례로 번역돼 나올 나머지 4권에서도 비슷하다면 독자들에겐 여섯 권이라는 적잖은 분량을 읽어냈다는 뿌듯함 위주로만 기억될 수도 있다.

책 뒷면에는 워싱턴포스트가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의 바이블'이라고 평가했다는 홍보문구가 적혀 이 소설이 찬사와 별칭 사이에서 격론을 불러일으켰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험한 요구 하나만 빼고는 멋지기 이를 데 없는 남자 그레이와 이름마저 공주 이름인 여자 아나스타샤의 이야기가 성(性)의 기준에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한국 독자들의 책꽂이에도 착착 꽂힐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남자는 기독교인이란 뜻의 영단어 크리스천(Christian)을 이름으로 쓴 '크리스천 그레이'고 이 여자는 강철이라는 뜻의 스틸(Steel)과 발음이 같은 성(姓)을 써 '아나스타샤 스틸(Steele)'이다.

영국 작가 E.L.제임스 지음. 박은서 옮김. 시공사. 1~2권 각각 1만2000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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