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
  • 경남일보
  • 승인 2012.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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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객원논설위원, 경남교육포럼 상임대표)

지금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이제는 40대 중반이 된 한 제자가 있었다. 80년대 중반, 필자가 교직에 들어가 경력이 한 3년쯤 되었을 때다. 아직 햇병아리였지만, 나름 자신감으로 건방을 부릴 때였던 것 같다. 내가 담임을 맡았던 반에서 이 녀석은 이른바 문제아였다.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나가 놀기도 했고, 학교를 안 오고 마산역 주변에서 배회하다 내게 붙들려 오기도 자주 했다.

한 번은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학생 지도실로 데리고 가서 바닥에 엎드리게 해놓고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렸다. 내가 작심을 하고 달려드니 처음엔 그 무자비한 매질을 잘도 견디던 녀석이 나중에 도저히 못 참겠던지 몸을 뒤틀다가 그만 팔에 맞고 말았다. 뚝 하는 소리도 났고 팔이 부어오르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무조건 택시를 잡아타고 당시 마산에서 제일 큰 병원으로 달려갔다.

무슨 인연인지 그 학생의 누나가 그 병원에 간호사로 계셨고 마침 당직근무를 하고 있어 아이를 누나에게 맡길 수 있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응급실 입구에서 담배만 피우고 있었는데, 한 시간 쯤 뒤에 동생을 데리고 응급실로 내려온 누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팔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가벼운 타박상입니다. 오늘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내일 학교로 보낼테니 더 때려 주십시오. 제 동생은 좀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릴 아입니다.”

한 5년쯤 더 지나 삼십대 초반의 제법 이력이 붙을 즈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당시 필자는 학교에서 학생 상벌이라는 보직을 맡았다. 상 줄 일보다는 벌 줄 일이 훨씬 많았던 기억이다. 그때 필자가 있던 학교는 교실이 모자라 벌을 받는 아이가 마땅히 가 있을 곳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비어있는 지하실을 임시로 학생 지도실로 쓰고 있었다. 유리창 하나도 없는 지하실이었다.

깜박하고 벌서는 학생 한 명을 지하실에 그대로 둔 채 퇴근을 하고 말았다. 이 착한 학생은 영문도 모른 채 마냥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다 지친 그 아이는 한밤 중에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하실 입구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놀란 숙직 선생님이 문을 열어 주고 집에까지 택시로 귀가를 시켰다.

그 다음 날 출근을 해 숙직 선생님한데서 지난밤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그 사태의 심각성에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교장 선생님께 보고하고 학부모에게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드리고 저녁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찾아갔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어젯밤 일을 모르고 계셨다. 나보다 열 살은 더 위로 보이던 그 학생의 아버지는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만 하기 다행입니다. 그런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제 아이에게 더 관심 가져 주십시오.”

돌이켜보면 필자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위에서 예를 든 이야기 말고도 참 많은 사고와 문제로 주변을 힘들게 했지만, 좋은 사람들이 계셔서 원만하게 해결이 되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누구든지 생각이 깊어지고 이런 시행착오를 거울 삼아 교사는 이력이 깊어진다. 이런 경우는 비단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지금 사회는 교사에게서 열정을 찾아보기 어렵다고들 한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침을 튀기며 아이들을 휘어잡는 교사에게서 그런 포스를 느낄 수가 없다고들 한다.

최근 들어 교직사회에서 명예퇴직이 늘어나고 있다.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교사가 학교를 떠난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결정이고,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교육적 손실이다. 앞에서 말씀드린 교직에 대한 이런 사회적 인식이 명예퇴직의 증가에 한몫을 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데 교육의 질은 절대로 교사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 ‘선생 해 먹기 어렵다’는 이런 교사들의 자조 섞인 푸념이 지속되면 이는 교육적·국가적인 손실이다.

교사에게 신뢰를 보내자. 선생님들에게 힘을 실어 드리자. 이것은 그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아가서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일이고, 장차 우리나라의 미래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박종훈 (객원논설위원, 경남교육포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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