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한국국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가물가물하지만 피천득의 ‘인연(因緣)’이란 수필을 배운 적이 있다. 피천득 그가 일본 도쿄에서 만난 아사코라는 소녀와의 수십 년에 걸쳐 세 번의 만남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마지막에는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는 마지막 구절은 아려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글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입거나 혹은 입히거나 하여 서로의 마음을 다치면서 살아가는 일이 종종 있게 된다. 사람의 관계 속에서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인간관계란 항상 좋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관계에서 늘 배려하고 양보하여야 하는 힘겨움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가끔씩은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고, 그들의 성숙된 마음에 놀라곤 한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평범한 인간이고 아직도 미성숙된 인간인지라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그냥 무조건적으로 용서할 만큼 너그럽지는 못한 것 같다.
사람들은 인연이 깊으면 깊을수록 서로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고,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을 때 겪게 되는 아픔의 깊이는 더 넓고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때론 서로서로를 해(害)하여 악연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지금 나를 해하는 사람은 전생에 내가 해를 끼친 사람이기 때문에 현생에서 그 업보를 갚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랑과 자비로 용서해야 한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말처럼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또 이해가 되는 말이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 적을 만들지 말라고 했던 스승의 말처럼 결국 인간관계는 돌고 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더 큰 악연을 끊기 위해서는 내가 포기하고 인연을 놔버려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놔버리지 않으면 내가 더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는 인간이 태어나서부터 배우게 되지만 어떻게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을 배우거나 방법을 구체적으로 배운 적은 없는 것 같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사람에 대한 적응력만 늘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손해 보지 않는 손익계산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리는 것 같다. 그래도 내겐 아직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와 나보다 나를 더 아끼는 아버지와 가족이 있어 이 세상에 당당하게 맞서 싸울 힘이 바닥나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인연이란 내가 스스로 맺어가는 인간관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인간관계의 끈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인연이고, 내가 용기 내어 그 연을 끊어내면 악연 또한 끊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한우 (한국국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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