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58>
오늘의 저편 <158>
  • 경남일보
  • 승인 2012.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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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댁은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나병이 발병하고 나서 그녀는 뼈저리게 후회하곤 했다. 밤마다 남편에게 아들을 보여주었다는 그 사실에 대하여. 단 한 번도 남편이 진석을 안거나 어루만지거나 하지 않았다. 오로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나병이 쉽게 옮기는 병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주워들은 상식으로도 여주댁은 알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손자에게만은 나환자의 숨소리조차 들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삼팔선 이북으로 인민군을 밀어붙이고는 있지만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여주댁도 알고 있었다. 안전만 따진다면 아직은 고향에 머물러 있는 것이 백번 낫다는 것을. 이러한 때에 서둘러 서울 집으로 돌아가려는 건 역시 아들과 손자를 하루라도 빨리 떼어놓기 위함이었다.         

 “어머닌, 진석이가 가엾지도 않으세요?”

 동숙이가 대문에 입을 대고 반문했다.

 “이년아, 네 년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 어미 맘을 모를 것이다.”

 여주댁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딸자식의 아픈 데를 콕 찔렀다.

 동숙은 입을 쑥 내밀며 뒷마당으로 몸을 돌렸다.

 “오빠, 딱 한번이에요. 한번만이라도 우리 아기 보세요. 오빠하고 꼭 닮았어요.”

 민숙은 뒷방 문에다 대고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진석아, 아기 얼굴 한번 본다고 탈이 나는 건 아냐. 너도 그건 잘 알잖니?” 

 동숙이도 거들었다.

 “누나, 저라고 왜 용진이가 안 보고 싶겠어요? 그렇지만 안 볼래요. 안 본다고요? 빨리 떠나세요.”

 진석은 귀를 막으며 부르짖었다.

 “형님, 안 되겠어요. 그냥 떠나세요.”

 동숙에게 용진을 도로 안겨준 민숙은 울음이 빨갛게 물든 눈을 훔치며 안방으로 도망을 쳤다.

 용진을 도로 받아 안은 동숙은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집안을 휘 둘러보았다.

 “으윽, 으흐흑흑??.”

 누이가 대문 밖으로 나가고 난 후 진석은 기어이 어깨를 들먹이며 참았던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안채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다. 처음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더라면 그 모습을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까.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는 아기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회오리쳐 올라오곤 할 때마다 주먹으로 애꿎은 벽만 툭툭 쳐야 했다.

 ‘용진아, 내 아들아, 잘 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야 해.’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듯 벌떡 일어났던 진석은 도로 털썩 주저앉았다.

 민숙은 드러누워 버리기 위해 베개부터 방바닥에 던졌다. 베개에 머리를 갖다 붙이다간 눈꺼풀을 있는 대로 찢어발겼다. 무엇엔가 홀린 사람처럼 신발도 신지 않고 대문간으로 화르르 달려 나갔다. 총총걸음을 떼어놓고 있는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뒷모습을 보곤 우뚝 섰다.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뭔가를 자꾸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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