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의 감초
약방의 감초
  • 경남일보
  • 승인 2012.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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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범 (창원시의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매일 접하는 것이 신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조간신문을 펼쳐들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보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신문은 중요하면서도 또한 하루살이 인생으로 취급받는다. 필자가 어린 시절의 농촌에는 화장실에 화장지조차 구하기 힘든 형편이었고, 볏짚을 깨끗하게 추려 두 겹으로 접어 뒷일을 마무리하는데 사용했고 그 이후에는 헌책이나 신문지를 활용했다. 네모 반듯하게 잘라 화장실 한쪽 귀퉁이에 못이나 철사줄에 끼워 놓으면 훌륭한 화장지였다. 옛날 재래식 화장실은 습기가 차기 때문에 신문지는 습기를 먹을수록 보드랍고 사용하기가 좋았다

옛날과 오늘날의 폐신문지 활용도도 차이점은 있다. 붓글씨 연습을 할 때 먹을 잘 먹기 때문에 요긴하게 쓰고 사각 도시락 포장지와 특별한 놀이기구가 없던 시절 동네 꼬마아이들의 딱지 등 팔방미인이어서 늘 신문지는 모자라기 마련이었다. 또 엿장수는 가락엿을 신문지로 말아주었고 번데기장수는 신문지를 접어 만든 깔데기에 담아 주었다. 또한 풀빵장수, 호떡장수 등은 빵이나 호떡을 담는 봉지로 사용해 종이가 귀한 시절 제몫을 다하는 귀한 몸이었다. 우리나라 옛 농촌은 거의 초가삼간이었다. 벽은 흙벽이어서 빈곤한 촌집에서는 벽지로 활용되었고 여러 차례 덧칠하면 안성맞춤이었다.

요즈음에 폐신문지는 어떻게 활용되는가. 우리가 흔히들 사무실 등에서 짬뽕이나 자장면을 시켜 먹을 때 테이블 보자기로 사용하고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식당에서 음식배달을 갈 때도 음식을 덮는데 활용되고 집에 구두나 운동화 등 장기간 보관하는 신발 속에 습기 제거용으로 최고다.

신문지는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노숙인들이 이불로 애용된다. 신문지를 여러 장 덮으면 신문지 사이의 공기층이 단열효과를 가져와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유리창도 물을 뿌린 뒤 신문지로 몇 번만 문지르면 얼룩 없이 깨끗하게 닦을 수 있다. 신문지 잉크의 미립자가 유리창 얼룩과 서로 잘 엉키는 성질 때문이다. 게다가 신문지는 흡수력이 뛰어나 신문지에 엉켜진 얼룩이 다시 유리로 옮겨가지 못하게 한다.

방바닥 장판 밑에 신문지를 깔아두면 습기가 차오르는 것을 막고 겨울에 바깥에 있는 수도계량기나 노출된 파이프에 신문을 감아 놓거나 덮어 놓으면 동파를 막는 데도 요긴하게 쓰인다. 특히 생선을 구울 때 신문지를 덮으면 기름을 흡수해 냄새를 없애고 기름이 튀는 것도 막아 준다. 야채나 과일을 보관할 때는 신문지로 감싸 냉장고에 넣어 두면 오래도록 신선함을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옷에 껌이 묻었을 때도 그 위에 신문지를 깔고 다리미로 다리면 껌이 감쪽같이 신문지에 묻어 나간다.

일반 식품들은 일정한 유통기간이 지나면 버려지지만 신문지는 재생된다. 한 폐수집상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IMF 외환위기 때 신문 회수율이 최고로 올라가고 요즘 같이 경기가 조금 나아지면 회수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손님이 많아지면 경기가 좋아진다는 일반상식과 반대로 신문회수 고객이 떨어지면 경기가 나아진다는 한 폐수집상 자신만의 경기예측 지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신문의 날을 맞아 한 언론사의 ‘하루살이’지만 할 말을 다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 기사를 인용해 보면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내 가랑이를 있는 대로 벌린 채 화장실의 악취를 30분도 넘게 견뎌야 했으니 ‘우라질’ 화장실엔 휴지도 없었다. 내 몸은 있는 대로 구겨진 뒤 뼈마디가 부스러지는 그 고통이야말로 형언할 수 없다. 더러운 똥으로 칠갑을 했다. 똥 종이가 된 것이다.”

그래도 단돈 400원이란 헐값으로 팔리는 신세지만 자기만큼 쓰임새가 있는 존재가 어디 있나. 10만자가 넘는 자기 한 몸은 글자수로 따지면 어지간한 단행본 한 권과 맞먹는다는 것이다. 자기가 없었다면 인간의 지적 진보는커녕 제대로 된 역사도 없어지거니와 종이가 귀한 농촌에선 비록 화장지로 이용됐지만 자기가 쓰이지 않는 구석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세상은 좋아졌다. 굳이 신문을 보지 않더라도 요즘에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하루뉴스 페이지뷰가 9000만건에 이를 정도이니 자기를 천대하는 요즘 세상을 보며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 40개 지면인 요즘은 폐지 처리가 성가신 문제지만 8개면이던 옛 시절 화장실에선 정말 귀한 몸이었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지만 신문은 아직까지 귀하신 몸으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강용범 (창원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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