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59>
오늘의 저편 <159>
  • 경남일보
  • 승인 2012.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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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문둥병자 치다꺼리나 하라는 건가?’

 용진을 안고 마을을 벗어나는 여주댁 모녀를 지켜보며 화성댁은 맥없이 중얼거렸다. 간밤에 안사돈이 일부러 찾아와서 오늘 떠날 것이라는 말은 했다. 용진을 데려갈 것이라고 하며 외손자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서울로 오라는 말도 친절하게 해댔다.

 ‘이년을 당장 죽여 버릴 거야.’

 모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멍청히 서 있던 화성댁은 눈을 벌겋게 뜨며 딸네 집으로 몸을 돌렸다. 더러운 딸의 팔자를 생각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세등등하게 팔을 앞뒤로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저년이 실성을 했나?’

 멍청한 얼굴로 실실 웃으며 서 있는 민숙을 보며 기세가 바로 꺾여 버린 화성댁도 덩달아 실실 웃었다. 팔을 천천히 흔들며 딸에게 다가갔다.

 “백일도 안 된 새끼를 떼어놓는 어미가 미치지 않으면 그게 어디 어미냐? 이년아 차라리 실컷 울어. 눈물이 말라버렸냐? 이 어미 눈물 빌려주랴?”

 화성댁은 딸의 어깨를 마구 잡아 흔들며 통곡을 해댔다.

 “허, 허, 흐흑흑흑??.”

 급기야 민숙이도 잃어버렸던 슬픔을 되찾은 사람처럼 어깨를 들먹이며 울음에 신들리기 시작했다.

 “그래, 울어라 이년아. 울어야 산다.”

 지랄개떡 같은 딸의 팔자에 신들려 버린 화성댁도 살풀이굿이라도 하듯 펄쩍펄쩍 뛰며 울었다.    

 하루해를 산 너머로 떨어뜨린 서쪽하늘은 벌겋게 화를 내고 있었다.

 부산까지 피난을 갔던 형식은 서울로 돌아가던 길에 학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자기야, 그냥 서울로 가요 응?”

 화심은 학동이 시야에 들어올 때부터 영 입맛이 떪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본처가 와 있으면 어떡하지? 딸애 하나 있는 고것은 보통 영악하지 않다고 했는데??.’

 화심은 제바람에 자꾸 오금이 저리고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정자 모녀에게 머리털이 다 뽑히는 상상까지 하며 슬그머니 머리로 손을 올리기까지 했다.

 “먼저 서울로 가라니까 왜 자꾸 따라오는 거야?”

 형식은 간살부리는 화심이가 귀찮기만 했다. 서울로 갈 때 가더라도 수중에 있는 현금을 아내의 손에 쥐여 주고 싶었다. 순희의 재롱도 여간 그리운 것이 아니었다. 

 ‘제발 무사히 피난길에서 돌아와 있어야 할 텐데??.’

 아내와 딸만 생각하면 형식은 미안한 마음부터 앞서고 있었다.

 “어머, 말도 안 돼. 전쟁 통에 여자 혼자 어딜 가란 말씀이에요? 나 같은 건 어떻게 되던 상관이 없단 말인가요?”

 화심은 뾰로통한 얼굴로 훌쩍거리는 시늉까지 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대꾸 대신 ‘큼큼’ 하는 헛기침 소리만 내던 형식은 시골집 사립문이 보이자 화심에게 정지 신호를 보냈다.

 “빨리 와야 해요.”

 화심은 무심결에 보글보글한 머리를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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