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161>
오늘의 저편<161>
  • 경남일보
  • 승인 2012.08.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냐. 아니라니까?”

 민숙은 당황히 눈물부터 훔쳤다. 형식의 오해를 풀어주어야 했다.

 ‘무슨 말부터 꺼낼까?’

 그녀는 형식의 옆얼굴을 힐끔거리며 상대의 눈치를 살폈다.

 “진석이 형은 잘 지내고 있죠?”

 할머니의 장례를 치러 보았던 터여서 초상 치르는 일의 쓸쓸한 어려움을 형식이도 잘 알고 있었다. 난리 중에 상을 당해야 했던 누나 옆에 진석이 형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으응? 그, 그인??.”

 민숙은 윗니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할 말도 깨물어 버렸다. 남편에 대하여 지금 말해야 했다. 눈앞에 버티고 있는 형식이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속이기 위해 짜 놓은 완벽한 그 각본을 말이었다.

 ‘지금 말해. 빨리! 빨리 말하란 말이다!’

 머릿속에선 쉴 새 없이 재촉하고 있었다. 참담한 기분에 얽혀든 민숙은 말할 의욕을 상실한 채 멍청히 서 있었다.

 “형 지금 집에 있죠? 얼굴이라도 보고 갈게요.”

 형식은 안으로 들어갈 기세로 민숙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사실 그, 그인 흐흐흑흑??.”

 민숙은 정말이지 아무 대책도 없이 문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곤 설움이 북받쳐 울음을 터드리고 말았다.

 ‘진석은 읍내 서점에 갔다가 인민군에게 붙잡혔다. 포승에 묶여 이북으로 끌려가다가 탈출을 시도했고 발각되어 총알세례를 받고 말았다.’

 피난을 갔던 마을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 가족끼리 이렇게 입을 맞추어 놓은 것이었다.

 “어, 엉! 어쩌다 형이???”

 대문 밖으로 쫓겨난 형식은 뒷머리가 멍해 옴을 느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버린 진석에 대한 애석한 마음 같은 건 생기지도 않았다. 남은 평생을 고독히 지내야 할 민숙의 앞날에 대한 연민이 가슴을 찢어놓고 있었다.

 “흥, 재수 없는 저 여자가 당신 애인이라도 되는 거야?”

 형식의 낯빛이 하얗게 변하자 화심은 불퉁거리며 심술을 부렸다.

 “뭐? 재수 없어?”

 순간 형식은 화심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남편 잡아먹은 년아, 그 상판 좀 보자. 니 남편 잡아먹고도 모자라서 남의 남편 까지 잡아먹으려 하니?”

 화심은 뺨을 감싸 쥐며 민숙의 집 대문을 향하여 악을 써 댔다.    

 “뭐? 어떤 년이야? 어떤 년이 내 딸한테 지랄 같은 소릴 씨부렁거리는 거야?”

 마침 딸네 집에 와 있던 화성댁은 서슬이 시퍼런 얼굴로 달려 나왔다.

 “어머니, 그만 하세요.”

 민숙은 저고리 소매를 둥둥 걷어 부치며 달려 나오는 화성댁을 안으로 밀었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넌 오늘 내 손에 죽었다.”

 급기야 눈이 뒤집히고 만 형식은 화심의 머리채를 움켜잡곤 민숙의 집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