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것이 많은 것인 옥외광고
적은 것이 많은 것인 옥외광고
  • 경남일보
  • 승인 2012.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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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유럽연구소 부소장)

현대건축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유리의 사용이다. 이를 가장 잘 고안한 사람은 미즈 판 데어 로에라는 건축가이다. 그는 독일 바우하우스의 교장으로 있다가 나치를 피해 미국 시카고로 가서 전면 유리건축을 완성시키고 세계적으로 전파하였다. 이러한 건축디자인 기법은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선언에서 시작된다. 이 때문에 그의 건축물들은 매우 간결하다. 즉 장식을 배제하고 기능상 꼭 필요한 지붕, 구조, 벽만을 설치한다. 이도 최소한의 필요 두께만을 주어 간결함의 극치를 달리게 한다. 심지어 단순해 보이는 전면 유리벽으로 극단적인 시각적 경량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에 정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것은 우리나라의 옥외광고물인 것 같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우리 속담을 따르느라 그랬는지 크고 많은 간판을 붙이는 것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상가 빌딩에는 간판이 전체를 뒤덮고 있어 건물인지 광고물 설치대인지를 혼돈하게 할 지경이다. 야간광고도 주목을 끌기 위해 더 크고 밝은, 심지어 움직이는 현란한 조명이나 전광판 조명을 설치해 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도한 옥외광고물은 우리의 도시공간을 망가뜨리고 있다. 가장 심각한 폐해는 도시경관의 파괴이다. 주된 요소 중 하나인 건축물을 광고물이 모두 가리고 있으니 경관형성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시민들은 특징 없는 얼굴을 가진 도시의 시각공해에 시달리며 스트레스와 소외 속에서 살고 있다. 이는 난립된 과도한 크기의 간판이 사람의 시지각적 두뇌용량을 초과함으로써 생기는 일이다. 야간의 과도한 광고물 조명, 특히 동영상은 눈부심으로 인한 빛 공해를 초래하기도 한다.

물론 간판이 모든 경우에 작고 소수이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는 호텔, 음식점, 도박장 등이 즐비한 세계적 관광도시이다. 이러다 보니 각종 광고는 화려하고 특별하며 때로는 몹시 과도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야간에는 화려한 전광판 광고가 경관조명과 더불어 도시 전체를 불야성으로 변화시킨다. 이것이 매력이 되어 관광객들은 이곳을 꿈의 여행지 중의 하나로 손꼽는다. 이는 이러한 옥외광고가 일상을 떠난 즐거움과 특별한 매력을 제공해 주도록 의도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훨씬 더 과도하고도 무질서한 옥외광고물 속에서 매일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공공디자인 붐이 일면서 중앙부처, 지자체, 정계, 학계 등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그 성과는 아직도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특히 경상남도 내의 대부분 지자체들은 광고물 시범거리 사업을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옥외광고물의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도시공간 내에서의 광고물의 의미와 역할을 잘 가늠하고 설정해야 한다. 즉 단순히 광고매체가 아닌 경관차원에서의 설치 및 디자인을 고민해야만 한다. 또한 최소한의 기준을 요구하는 관련법 외에 지역의 특성과 특징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만 한다. 이 외에도 건물 입면이나 연면적에 비례하여 광고물의 크기를 정하는 총량제 등도 시행해야 한다.

당연히 광고업계 종사자들의 의식변화는 필수적이다. 이제는 속칭 ‘간판쟁이’가 아니라 진정한 광고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진주시를 비롯한 지자체와 도 차원에서 연이어 개최되는 아름다운 광고물 경연대회 등은 고무적인 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변해야 하는 것은 시민과 광고주의 의식변화이다. 자기 가게만 선전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도시미관을 해치며 시각공해를 야기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작지만 대비나 대조효과 등으로 잘 꾸민 옥외광고가 눈에 더 잘 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앞서 설명한 미즈의 건축이 이러한 최소를 지향하면서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며 수려한 내용을 담아낸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정말 작은 것으로 크고 품격 있는 도시를 만들어 나갈 때이다.

최만진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유럽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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