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곡
사모곡
  • 경남일보
  • 승인 2012.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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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식 (진주 선학초등학교 교장)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유 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불러보는 그리운 이름입니다.

어머니!

굵어진 손마디 마디마다 수많은 노고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깊어진 주름마다 삶에서 얻은 지혜가 가득 숨겨져 있습니다. 전보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더 깊어진 눈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굽어진 허리는 세상을 더 낮게 살라는 겸손을 말해줍니다.

못 다한 배움에서도 번뜩이는 지혜는 학교에서만 가르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책이나 좌선만이 마음을 넓히는 게 아닌가 봅니다. 삶 그 자체가 커다란 교과서로 그 속에 바다만큼이나 넓은 마음을 가르치는 그 무언가가 있는가 봅니다. 사랑받는 만큼 사랑한다는 말도 어머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 것 같습니다. 받은 것은 없는데도 가없는 사랑을 주기만 하시니 말입니다.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닌데 저 멀리 들판이나 동네 가운데에서 온 동네 얘들이 다 정신없이 놀고 있을 때도,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으라는 어머니 목소리는 어찌 그리 잘 들리는지요!

베푸는 것은 꼭 부자가 아니라도 되는 모양입니다. 손님이 오면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도깨비방망이라도 숨겨두신 건지, 어디서 뚝딱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냅니다. 함박웃음으로 숨겨둔 술과 함께 내는 음식은 손님의 발걸음을 잦게 합니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투정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무슨 짓을 하든 받아주는 넓은 품이 그리운 때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요구하면 들어주는 어머니는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커다란 보물창고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싸우다 코피를 흘리다가도 어머니가 나타나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 곧 쓰러지던 아이가 펄펄 날아올라 상대를 쓰러뜨립니다.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의기양양하게 어머니 쪽을 바라보다가 뺨에서 천둥소리가 나고, 눈에서는 번갯불이 번쩍입니다. 친구와는 사이좋게 지내는 거라는 말씀을 행동으로 가르치십니다.

태어난 손자를 보시고는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시는지 모릅니다.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 큰일을 이룬 듯 동네방네 자랑입니다. 늙으신 몸으로 자식을 키우듯 손자를 건사합니다. 그리도 어렵고 힘든 일을 한 번도 아니고 두 세대에 걸쳐 말없이 행하시는 걸 보면, 이 세상을 위해 이루어야 할 큰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유 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불러보는 그리운 이름입니다.

어머니!

정호식 (진주 선학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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