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들, 길을 잃다
나그네들, 길을 잃다
  • 경남일보
  • 승인 2012.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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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학교 교수)

고속도로의 휴게소들이 제공하고 있는 여행지 안내정보들은 여행자들이 행선지로 향하는 시선을 막다른 골목에 가두어 버리는 불편한 것들이다. 휴게소의 관광안내센터가 제공하는 팸플릿이나 내걸린 대형 관광안내도는 휴게소가 속한 행정구역내의 도로나 명소만 보여주어서 그렇다. 휴게소의 여행자들은 경계를 넘어 인접지역으로 가는 길은 모두 지워 버린 관광안내지도를 접하고 졸지에 ‘길 잃은 나그네 처지’가 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보면 휴게소들은 단절과 불통의 여행정보들만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휴게소는 나그네의 주막 같은 곳

 

올해도 휴가철의 휴게소는 많은 휴가 인파들로 넘쳐났다. 휴게소에 잠시 들른 휴가객들은 시원한 바닷가나 계곡에서의 즐거운 휴가를 기대하면서 잠시 쉬어간다. 휴게소에서 그들은 화장실도 들르고, 서둘러 떠나느라 못 챙겼던 식사도 해결하고 군것질도 즐긴다. 최근에 휴게소에는 여행자들에게 연주 이벤트를 제공하거나 무료세탁과 샤워도 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까지 생겨났다. 휴게소는 길 떠난 나그네에게 고달픈 여독을 덜어주는 주막과 같이 잠시 쉬어가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주는 고마운 장소이다.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들이 품격 높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비해 길을 묻는 나그네들이 정작에 필요로 하는 정보는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 휴게소의 안내센터에 가서 지도를 구하거나 관광안내 입간판을 보라. 휴게소에는 다음 행선지로 이어지는 정보를 그려 넣은 지도는 거의 없다. 여행자가 손에 넣을 수 있는 지도는 고작해야 인접지역의 지명이나 도로가 죄다 지워져 있는 것들뿐이다. 휴게소가 속한 지역의 등산로나 섬들은 꼼꼼하게 그려 넣으면서도 다른 관할 자치단체의 정보는 모조리 빼버린 것들이어서 여정에 참고가 되지 못한다. 그러한 지도는 여행자들에게 사라져 버린 여행길을 찾지 못해 어쩔 줄 몰라 당황하게 한다.

인접 관광지 정보를 지워 버린 관광안내도나 지도가 생겨난 것은 여행을 몰라서이다. 여행이라는 말은 원래 고생이나 고통을 뜻하는 ‘travail'에서 왔다. 그래서 옛날의 여행은 길 떠난 여행자가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여행이 여행도중의 여행자를 편하게 하는 서비스가 개선되면서부터 즐거운 여행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여행자가 찾아가는 목적지들은 편한 잠자리와 음식과 같은 편의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래서 길손들이 도중에 잠시 들르는 휴게소들은 다음의 여정의 불안을 덜어주면서도 편안하게 목적지로 인도해주는 소중한 기능을 하는 곳이다.

인접지역의 정보를 지워버린 지도가 탄생한 것은 여행자들을 자기 지역으로만 끌어들이려는 좁은 안목에서다. 지워버린 지도가 얼마나 여행자들을 불편하게 할 것인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안다. 여행자들은 한 곳의 행정단위의 경계 내에서만 여행하지 않는다. 그들의 여행일정은 대개가 여러 시·군을 넘나들며 여행하는 것들이다. 지워버린 지도는 고속도로가 사통팔달로 뻗어 있는 데도 여전히 행정구역으로 구분된 경계를 넘나들지 못하는 단절과 불통의 관광안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휴게소는 여정을 이어주는 곳

휴게소는 길 떠난 나그네가 쉬면서 여독을 풀면서 길에서의 새로운 정보를 얻는 곳이다. 여행 중도에 여행자들은 다가올 즐거운 여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휴게소에 들러 목적지로 이어지는 새로운 정보들을 확인하고 다음 여행을 편안하게 이어간다. 즐겁고 편한 여행을 위해서는 여정을 이어주는 경계를 넘나드는,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여행정보가 들어 있는 새로운 관광안내 지도가 필요하다.

고원규 (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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