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64>
오늘의 저편 <164>
  • 경남일보
  • 승인 2012.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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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하신 거예요?”

 울먹임을 간신히 억제하는 민숙.

 “며칠 더 산다고 설마 염라대왕이 날 잊어버리겠니?”

 진석의 여유로운 말. 

 ‘흥, 언제나 누나만 애가 타지. 바보처럼 왜 그렇게 사는 거야?’

 형식은 중얼거리며 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 같아선 누나의 손을 이끌고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었다. 순순히 따라나설 누나도 아니었지만 남편의 나병을 숨기고 싶어 하는 마지막 그 자존심은 지켜주고 싶었다.

 아직 새벽이 눈을 비비기 전에 진석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초저녁에 반짝이던 별들마저 짙은 구름 속에 꼭꼭 숨어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용진의 백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언제는 아기가 태어난 뒤로 미루라고 하더니?’

 진석은 핏기 없는 얼굴로 방에서 나갔다. 비로소 아내의 ‘미루기 작전’에 휘말려들고 있었다는 판단이 선 것이었다.

 그러했다. 민숙은 진석에게 오로지 삶을 강요하며 여하간 살아야 한다고 애걸복걸하지 않았다. 말로는 죽어도 좋다고 찬성해 주면서 그 시기를 자꾸만 연기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채 쪽으로 간 그는 댓돌 위에 놓인 민숙의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실 어둠에 묻혀버린 신발이 보일 턱이 없었다. 섬돌 위에 얌전히 있을 아내의 신발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민숙아, 잘 있어. 행복해야 해.’

 진석은 목을 들어 안방을 바라보았다. 깊이 잠들었는지 안에선 가느다란 숨소리조차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남몰래 눈물짓는 아내의 모습이 망막 깊은 곳에서 돋아나고 있었다.

 ‘민숙아, 우리 아들 용진이 잘 부탁해. 용진이가 좀 자라고 나면 당신도 좋은 사람 만나서 꼭 재혼하도록 해. 알았지?’

 대문간을 바라보며 머리를 가로 흔들던 진석은 뒷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딱 잘못하여 대문빗장 벗기는 소리에 민숙이가 잠을 깬다면 목숨을 끊는 일은 미수로 끝나고 말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진석은 이십사 시간 내내 아내의 감시를 받게 될 것이 뻔했다.

 진석은 뒷담 아래 있는 개구멍으로 다가갔다. 바로 그저께 밤에도 밖으로 나간 그는 준비해둔 밧줄을 들고 나가선 꼭꼭 숨겨두었다.

 밤을 꼬박 밝힌 어미 부엉이가 목쉰 가성을 두 번 뽑았다. 새끼 부엉이는 덜 익은 가성으로 흉내를 내며 날갯짓을 했다. 

 순간 흠칫 놀란 진석은 보이지 않는 부엉이들에게 억제된 한숨만 보내곤 익숙한 걸음걸이로 어딘가로 향했다. 좀 움펑한 곳에서 걸음을 멈춘 그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여긴데? 아닌가?’’

 진석은 어둠속으로 목을 작게 돌려댔다.

 ‘맞는데?’

 다른 곳으로 눈길을 그어대다간 파던 그 자리를 다시 파기 시작했다.

 ‘이상한데?’

 기어이 몸을 일으키곤 사방으로 좀 더 넓게 눈길을 그어댔다.   

 “이걸 찾는가?”

 화성댁의 목소리가 어둠속에서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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