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늙은이, 늙은 젊은이
젊은 늙은이, 늙은 젊은이
  • 경남일보
  • 승인 2012.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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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철 (한국국제대학교 홍보실장)

어릴 적부터 ‘어른스럽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좋게 말해서 그렇지, 사실상 ‘늙어 보인다’는 뜻일 게다. 마흔을 훌쩍 넘긴 요즘에는 달갑지 않은 말이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 ‘늙수그레함’을 마치 ‘미학’의 한 분야인 양 여겨 즐겼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늙어 보이는 것’이 개성처럼 굳어져 상징적인 캐릭터가 돼버렸다.

실제 대학시절에는 캠퍼스에서 초면인 젊은 교수들이 먼저 인사를 해오고, 20대에 중고생들이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는 ‘국장급 수습’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었다. 정말이지 그 늙수그레함은 나이에 반비례해 더욱 또렷하게 대비되곤 했으며, 웃지 못할 에피소드와 해프닝은 책 몇 권을 쓰고도 남을 만큼, 지나온 삶의 곳곳에서 때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때로는 씁쓸한 기억으로 각인돼 있다.

흰머리가 많다거나 민머리 생김새도 아니어서 억울한 면도 없지 않지만 요즘처럼 사람들의 관심이 젊음과 늙음에 집중되고 또 건강보다는 외모에 더 집착하는 세태에서 보면 참으로 비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생김새가 아니라 생각과 행동, 의식과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적어도 그 나이에 맞는 꿈과 열정을 갖고 도전이 있어야 했는데, 늙수그레한 미학에 심취해 꿈과 열정을 모른 채 변화를 도외시하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스스로 늙어버렸다는 자책이 든다.

초고령화 사회에 직면한 요즘의 젊고, 늙음은 단순히 나이라는 숫자적 의미는 아닐 터이고, 생리학적 가치나 병리학적 진단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안티 에이징(anti aging)’과 같은 부자연스러운 착시현상이나 과시욕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혹자는 아날로그나 디지털로 젊음과 늙음을 구분 짓는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IT기술 때문이겠지만, 이 또한 정확한 잣대는 아닐 것이다. 아무튼 디지털은 깨어 있고 열려 있는 의식으로 변화를 수용하고 주도하는 자세를 상징적으로 비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젊은 늙은이’, ‘늙은 젊은이’라는 말이 있다. 앞에 붙은 형용사는 나이를 의미하겠지만, 뒤에 붙은 명사형은 생각과 의식의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지난 삶의 경험을 절대적 가치로 관념 지우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늙은이’, 즉 ‘늙은 늙은이’로 괄호 치는 치명적 오류가 아닐까 한다.

시간은 유한하고 소중하다. 그리고 어릴 때는 어른이 되고 싶고, 어른이 되면 젊어지고 싶은 것처럼 시간은 언제나 우리를 배신한다. 이제 지난 시간의 기회비용을 셈하고, 후회하기보다 지나온 ‘늙은 젊은이’를 분리해 내고 ‘젊은 늙은이’로 치환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 같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자꾸만 오버랩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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