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80원의 보람과 행복
6880원의 보람과 행복
  • 경남일보
  • 승인 2012.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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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완 (합동참모본부 사후검토관)

대충 30여 년 전 필자의 초급장교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최전방 근무시 가족이 의정부 모 병원에 입원하고 있어 병원을 가던 중 주택은행(당시)앞에 사람들이 50여m 줄을 서 있어 물어보니 “20년짜리 장기주택부금” 가입 때문이란다. 월 6880원을 20년간 넣으면 800만 원을 탄다는 소리에 적금통장을 하나 만들어 가족에게 준적이 있다. 그 때의 진풍경은 20년짜리 주택부금이 처음 나왔을 때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20년의 세월은 덧없이 흘러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살 때 그 적금 통장이 만기가 되어 800만 원이 아니라 1000만 원을 받아 요긴하게 보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년짜리 적금을 넣겠다고 줄을 섰던 기억이 새롭고, 당시 통닭 두세 마리 값에 지나지 않던 돈을 20년 동안 넣었다는 자체가 젊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 적금을 넣었던 20년 동안은 희망과 꿈과 기대에 부풀어 더 머무르고 싶었던 참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지금은 교육비, 통신비, 교통비 등 절약하기 어려운 소비 항목이 늘고 가격 또한 늘어나면서 적정 수입이 없으면 저축을 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이런 현상은 저소득층일수록 심각해 이는 가계대출과 이자 부담의 악순환으로 저축률 하락을 앞 당겼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경제통계에 따르면 1990년대만 해도 저축률이 20% 넘었던 우리나라가 올해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률에서 3.5%를 기록해 24개 국가 가운데 21위란다.

저축률 하락은 결국 가계 빚으로 이어져 사회불안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적정소득이 없는 한 카드 몇 장으로 지속적인 빚을 막아 낼 수 없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한국의 가계 빚이 가처분 소득의 155%에 달해 미국·일본의 120%는 물론 스페인의 130%보다도 더 높아 집값 폭락 사태 등이 오면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한국의 가계 빚이 연평균 13%씩 늘었다며 한국의 대출 관행은 오랜 경제 성장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과시하는 사회 풍토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꼬집었듯 지금 젊은이들(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은 집은 없어도 승용차는 굴리고, 수입은 없어도 문화생활은 해야 하고, 카드빚은 져도 자식 과외는 시켜야 되는 생활패턴이다. 아주 사소하지만 6880원의 숨은 뜻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1만원도 채 안 되는 돈을 20년간 저축했다는 사실에 대해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적은 돈도 20년간 모이면 내 집 마련의 출발이요 노후생활비 구축의 산실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제2의 IMF가 도래하면 어떤 결과를 낳을까? 대규모 퇴직, 생계형 창업, 이는 과당경쟁과 폐업으로 이어져 빈곤층 전락의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다. 자영업의 폐업과 파산은 가족 해체를 낳는다. 사회의 기본인 가족이 붕괴되면 동반자살이 급증하고 극빈층이 양산되며, 범죄가 늘고 사회불안이 증폭되며 공동체는 병들 수밖에 없다. 이는 불을 보듯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국가의 안정성과 성장잠재력은 낮아져 남미식사회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저축이란 쓰고 남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절약하면서 미래 행복을 위한 담보의 수단이다. 필자는 유년시절 지독한 가난을 맛보았기에 봉급의 절반을 저축해 놓고 나머지를 생활비로 쓰도록 가족에게 강요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족으로서는 두 아들을 키우랴(과외를 시켜 본적이 없음), 박봉이던 군인의 아내가 된 것을 때론 후회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당시로선 최선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정말 미안하기 짝이 없다.

며칠 전 10년짜리 적금 통장을 만들려다 ‘요즘은 암 등 몹쓸 병’이 많아 만기 시 필자의 생존여부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후 자식에게 빚을 물려주는 것보다 적금통장 남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통장을 만들었다. 세월이 가면 화폐가치가 떨어져 물가상승률에 뒤떨어짐을 알고 있지만, 적금하는 10년 동안은 물가상승률보다 ‘저축에 대한 희망과 꿈과 기대로 더 행복’해 할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노후연금이라 생각하고 지금부터 장기저축을 넣어봄이 좋지 않을까.

강태완 (합동참모본부 사후검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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