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내 삶의 목표"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내 삶의 목표"
  • 이은수
  • 승인 2012.08.2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쿠쿠 창업주 구자신 회장
“준비된 자에게 위기는 기회입니다.”

쿠쿠가 짧은 시간에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승부사 기질을 지닌 창업주 구자신(具滋信) 회장〈71〉이 있었다. 구 회장은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모두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며, 준비된 리더를 강조했다. 구 회장은 준비된 경영인, 예견된 성공신화를 쓴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먼저 생산라인이 바삐 돌아가는 양산공장 1층 작업장을 지나 계단을 올라 2층 사무실에 도착해 회장실 주변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사무실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집무실을 연상할 정도로 검소하게 꾸며져 있다. 접견실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비롯해 노무현 대통령 표창 등 각종 수상 내역들로 가득했다. 이어 현황설명을 통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기업 이미지를 엿볼 수 있었다.

구 회장은 1941년 2월 6일 진주시 지수면 능성 구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범한 시골 소년의 특별한 꿈을 들려줬다. 그리고 암울했던 시절에 시대의 지성으로 살아가는 고뇌, 정계진출의 꿈을 접고 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인이 되기까지의 가슴 뭉클한 인생역정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1997년 단군이래 최대의 국가적 위기 IMF 한파가 매섭게 몰아쳤다. IMF의 여파는 성광전자(쿠쿠홈시스의 전신)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L사를 비롯해 지금까지 성광전자가 OEM방식으로 납품하고 있던 전 기업의 주문 물량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그 때문에 3개월 사이에 공장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졌고, 1986년부터 1996년까지 꾸준히 증가하던 매출액도 곤두박칠쳤다.

“1997년 12월에는 OEM으로 납품하던 대기업으로부터 더 이상 경기가 어려워 납품을 받을 수 없으니, 자체 힘으로 생산물량을 소비하라는 납품중단 통보를 받았습니다.”

구 회장은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통과할 것인가, 아니면 그만 엔진을 멈출 것인가” 긴박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고통스런 시간을 보낸 뒤 1993년부터 준비해 개발한 전기압력밥솥을 독자 브랜드로 출시하여 정면승부를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구 회장은 최고의 품질을 고집했다. 이에 따라 70℃에서 8시간, 영하 20℃에서 15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한계 온도시험, 10회 낙하시험, 1만회 제품핸들 내구성 시험, 17중 안전장치 작동 시험, 압력폭발 시험, 3만회에 걸친 두껑 개폐 시험 등 지독한 품질 테스트를 거쳤다.

그가 품질 제일주의를 고집하며 1981년 회사의 존폐 위기속에서도 6000여대의 전기밥솥을 전량 회수해 3년간 공장마당에 쌓아두며 강력한 검증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렇지만 야심차게 준비한 제품출시를 앞두고 대기업에 선점 기회를 빼앗겼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쿠쿠(CUCKOO)’를 시장에 선보였다.

“쿠쿠는 요리와 뻐꾸기의 합성어로 맛있는 요리를 기대하는 마음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구 회장은 설명했다. ‘쿠쿠’브랜드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마침내 2002년에는 20여년간 유지해오던 성광전자라는 회사명 대신 쿠쿠전자, 쿠쿠(주)를 쿠쿠홈시스로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연구소 설립, 영업팀 결성, 현금거래 원칙, 광고전략이 주효한 것이 쿠쿠 성공신화의 비결이다.

구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대표적인 CEO다.

그는 “1988년 쿠쿠 브랜드는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그리고 출시 1년여 만에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세상은 이런 쿠쿠를 두고 신화라고 했으며, 우리의 결단과 행동을 신화라고 했다. 하지만 나와 우리 직원들은 알고 있다. 완벽한 품질 구현을 위한 우리의 준비는 냉정하고 철두철미했다. 결국 쿠쿠신화는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우리 쿠쿠 가족의 뜨거운 열망과 스스로에게 혹독했던 사전 준비가 만들어낸 거짓말 같은 진실이었다”며 공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구 회장은 2006년 장남인 구본학 사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다. 지금은 사회공헌과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고향의 후진양성을 위해 장학금을 출연하고 있다.

그는 “세상에 기여하는 삶을 사는 것이 내삶의 목표며, 내가 받은 만큼 사회에 되돌려 주는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2007년 쿠쿠재단을 설립한 것도 그 때문이다”며 “야구로 치면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전환한 셈이다. 세번째 터닝포인트를 맞이하는 내 가슴은 여전히 뜨겁다. 지금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며 활짝 웃었다.

글=이은수기자 eunsu@gnnews.co.kr·사진=황선필기자feel@gnnews.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