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잘못하면 독이 된다
‘경제민주화’ 잘못하면 독이 된다
  • 경남일보
  • 승인 2012.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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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은 ‘케인즈주의’에 의해 극복되었다.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고용과 가계소득을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는 물가상승과 고용 및 임금하락이 동시에 겹쳐지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을 일으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규제철폐, 세계화, 무역자유화는 ‘신자유주의’의 핵심논리였다. 세계무역기구(WTO)나 우루과이라운드 같은 다자간 협상을 통해 시장은 계속 개방됐다.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관장해오던 분야들이 민간에 빠른 속도로 이양됐으며 ‘케인즈주의’의 완전고용 노동시장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해체됐다. 이로써 시장의 비능률을 해소하고 경쟁의 효율성을 정착시켰다. 국가경쟁력도 강화될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해악은 긍정적 효과를 훨씬 넘어선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수출, 내수, 기업, 고용 및 소득과 같은 사회지표가 전반적으로 양극화가 되어버렸다. 현재로도 부자는 더욱 잘살며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끝없는 양극화로 달려가고 있다. 경기침체를 극복하려 정부를 배제시키고 시장을 터 준 결과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정부가 국민의 삶에 개입하지 않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었던 영국의 대처수상이 말했듯이 기업과 국가에게 ‘사회는 없었다.’ 사회가 방치된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너도나도 ‘경제민주화’를 말한다. 지금보다 더 많은 주체들에게 경제활동의 공평한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재벌은 물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까지 공평한 혜택과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노동자로부터 기업회장까지 같은 법적 사회적 보호와 제약을 받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처럼 일부 특정집단에 의해 경제력이 남용되거나 독점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경제민주화’인데, 경제학자가 아닌 평범한 필자가 보기엔 솔직히 꿈같다.

어떤 정당의 ‘경제민주화론'을 보면, 첫째, 기업오너 일가의 문어발식 기업확장을 막고 둘째,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막으며 셋째, 오너 일가들의 소득세율을 인상하며 넷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다섯째, 기업들의 탈세를 조사한다는 항목이 열거되어 있다. 경제의 공평한 운영정책이라기보다는 대기업과 오너 일가에 치우친 부(富)를 세율과 규제로 잘라내어 분배하자는 데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기업들이 불공정하게 부풀린 살을 도려내어 나눠주자는 말인데, 이해할 만한 내용이기는하지만, 이런 현실 부정적인 논리는 지속가능성이 없는 법이다. ‘케인즈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그와는 정반대인 ‘신자유주의’의 과거부정형 처방이 잘못됐듯이, 분배의 공평성은 성장을 거부함으로써 세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부의 분배차원에서 보편적 복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린 서유럽에서 이미 봤다.

저소득층은 정부의 복지수당에 의존하면서 궂은 일은 하지 않는다. 이민족들이 그 일을 대신하며 국부를 소진시킨다. 미국의 경우 또한 비교적 복지의 보편성을 가정했던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부채가 15조 달러에 이르고, 국가신용이 강등되고, 집행하던 예산이 갑자기 삭감·중단되어 2013년부터 재정절벽(fiscal cliff) 상태를 맞게 되었다. 분배와 성장이란 양날의 칼끝을 끌어안고 무당이 작두의 칼날을 타듯할 때 비로소 ‘경제민주화’를 정상적으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논해야 한다. 노동은 인간이 인간처럼 살아가는데 필요한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요즘 일부 병원을 보면 순수한 치료대상이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 환자를 대한다. 의료노동의 가치가 금전적 가치로만 환산된다. 인간의 행복, 생명을 건지는 건전한 노동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진 것이다. 돈을 목적으로 사는 부자들의 탐욕이 아니라 공장에서 열심히 땀을 흘린 후 시원하게 찬물로 샤워하고, 자기가 일하는 목적을 온전히 느끼는 사람의 노동이 정신을 충만하게 하고 삶을 가치 있게 한다. 이런 노동의 가치를 재정립하지 않고는 ‘경제민주화’, 분배와 성장의 논의는 불가능하다.

땀 흘리는 순수한 노동자들의 ‘경제민주화’ 가이드라인은 무상급식이나 복지수당을 받는 수동적인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의 가치에 적극적일 때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원칙하에 세워져야 할 것이다. 즉 공부하고 싶을 때 학비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고, 돈 버는 취업이 아니라 하고 싶은 노동을 할 수 있는 취업조건을 구상하고, 아플 때 큰돈 들이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으며, 맑고 깨끗한 수돗물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그런 공공의 ‘경제민주화’를 말한다.

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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