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간 사람이 출세하는 세상
모로 간 사람이 출세하는 세상
  • 경남일보
  • 승인 2012.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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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논설고문)

작금의 우리 현실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한때 정권의 실세라던 분들이 공천헌금, 수뢰 혐의 등으로 줄줄이 사법처리되고 심지어는 신성한 국회에 진출하기 위해 돈이라는 불법적 행위를 자행한 사실이 검찰의 공천헌금 수사에서 드러났다. 하나 이제는 정치권·학교·가정·공직사회·사회생활 등에서 원칙적인 절차와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다. 남의 눈을 속이고 적당한 거짓으로 약삭빠르게 사는 사람보다 정직하게 산 사람, 열심히 노력한 사람, 성실하게 일한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선진국을 따라잡느라 ‘빨리 빨리’가 우리의 별명이 됐지만 이제 바꿔야 할 때다.

그래서 현실을 바탕으로 타협과 협상을 통해 공동체를 더 낫게 만들려는 사람을 ‘정치가’라하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 정치권력을 쥐려는 자를 ‘정치꾼’이라 한다. 정치가는 ‘대화’를 즐기고, 정치꾼은 ‘말싸움’을 즐긴다. 정치가는 본심과 대화를 ‘함께 보지만’, 정치꾼은 본심과 ‘대화를 분리’한다. 정치가는 먼저 ‘듣고’, 정치꾼은 ‘먼저 말’한다. 정치가는 수단방법을 ‘가리지만’, 정치꾼은 수단방법을 ‘안 가린다’. 정치가는 실수를 ‘만회’하려고 애쓰고, 정치꾼은 실수를 ‘합리화’하려 애쓴다. 정치가는 ‘지킬 수 있는’ 약속인지 조심하지만, 정치꾼은 ‘지킬 수 없는’ 약속도 쉽게 한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불법행위 자행

목적이 옳다면 수단도 정당한 것이 많다. 우리 역사에서 목적과 수단을 잘 배합한 임금으로 세종(世宗)을 든다. 세종은 나라의 근본은 백성임을 일찌거니 터득했다. 세종은 어디까지나 백성이 잘 살도록 하는 것이다. 당시의 엘리트인 집현전의 상근직인 최만리 부제학을 비롯한 선비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만들었다. 목적의식이 철저해서이겠지만 제대로 하기 위해 스스로 공부도 열심히 했고, 그 수단을 철저히 챙기어서 끈질긴 반대에 걸 맞는 끈질긴 수단을 강구, 해냈다.

신의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르는 말로 ‘믿음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라는 뜻으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서로간의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법의 목적은 정의(正義), 합목적성, 안정성 등을 조화 있게 실현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공동체 안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법의 최종 목적은 정의를 실현함에 있다. 정의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마땅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생활규범이다.


목적달성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도덕의식이 실종된 파렴치한 인간이 청와대 수석을 했고,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볼 때 수단은 분명히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그 목적의 목적을 그르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도 현실이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수단을 강구할 때 목적의 목적에 그르치더라도 수단자체의 목적만을 위해서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이 유리하기도 한 사례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법의 정의는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며, 법에 적합한 것, 법을 준수하는 모든 것을 정의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말은 희망사항으로 현실과는 안 맞는 사례가 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말 역시 앞으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이상일 뿐 과연 그런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까지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듯이 경우에 따라 법은 힘 있는 사람에겐 무죄, 없는 사람에겐 유죄로 작용되어 온 사례도 부인하지 못한다.

사회적 약자에게만 준법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법치주의가 아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쪽에서도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아무리 법체계가 완비되어도 국민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국민생활이 보호되지 못하면 그 법은 장식적인 의미에 불과하다. 모두 수긍할 수 있는 법이 진정한 준법정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모로 가면 망하는 사회 돼야 한다

수단이나 방법은 어찌 되었든 간에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것을 두고 ‘모로 가나 기어가나 서울 남대문만 가면 그만이다’는 속담이 있다. 뇌물, 권력의 힘, 로비, 빽 등 불공정 행위로 남을 짓밟아 돈, 명예, 권력을 얻은 ‘모로간 사람’이 출세하는 세상이었다. 특히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돈 공천은 전형적인 매관매직이자 최악의 정치범죄이다. 친구고 선배고 스승·법까지 무시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해야 하겠다는 사람은 퇴출시켜야 한다. 이젠 바른길이 아닌 ‘모로 가서 서울에 도착하는 사람은 망하게 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수기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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