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하는 고통
못된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하는 고통
  • 경남일보
  • 승인 2012.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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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재 (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회장)

사람을 죽인 살인범도 진정 깨닫고 반성하면 동정이 여미는 게 세상인심이다. 피해 당사자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인간애라는 정상이 참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반대로 잘못을 하고도 만가지의 변명과 궤변으로 과오를 덮으려 하는 사람을 보면 오히려 그 잘못에 사람으로서의 배신감까지 덧생겨 더 미워지는 게 인지상정 같다. 얼마 전 공분을 일으킨 여러 살인사건의 범죄자 역시 자신의 혐의를 이리저리 피하고 부인하다가 결국 실토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했다. 국민들의 천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진 것이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더욱더 거세진 대일감정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돌지만 국토수호 의지를 담은 당당한 면모였다는 평가가 좀 더 우세한 여론으로 읽혀진다. 이전의 대통령이 야무지고 꿋꿋한 강단이 모자라서 방문을 못했거나 안한 게 아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행정구역상 지방순시 차원으로 해석하면 기분은 좋아지는 것 같다. 이러한 대통령의 행보를 시작으로 한·일간 묵은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표출되고 불미한 사건들이 빈발하고 있다. 양국의 대사가 본국에 소환되는 이례적 사건도 나왔다. 올림픽에서 두고두고 되뇌어도 통쾌한 역사적 한·일 축구전이 있었고,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마음으로부터의 사과표명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있었다.

나락에 빠진 정권의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고자 그 나라 수상은 우리 대통령을 상대로 외교적 결례를 강조하면서 항의 서한을 발송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접수를 거부했다. 우리 외교관은 일본 외무성 출입을 봉쇄당했다. 입장을 바꾸어 상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역지사지의 교훈을 아무리 되짚어봐도 일본의 행태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전범을 안치한 신사를 참배하네, 마네 하는 기이한 행동의 일본 각료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자국의 방위백서에 독도를 자기네 영토로 표기하는 트집을 일상화했다. 위안부 아니, 전쟁군인에게 성노예를 두게 한 역사적 사실에 증거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생트집으로 일관하는 일본의 안일함과 비겁함에 따름일 것이다.  유감이니, 통석의 염이니 하는 얄궂은 표현으로 순간을 모면하려는 옹졸함에서 아시아 대국이라는 대명사가 치욕스럽게 다가온다.

추적한 겨울비가 내린 1970년 12월 7일 오전, 나치 학살의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던 폴란드 바르샤바의 전쟁희생자 추모비 앞에 무릎 꿇은 신사가 있었다. 불세출의 정치지도자 독일 총리인 빌리 브란트였다. 그의 진정한 참회 눈물이 카메라 앵글에 또렷하게 잡혔다. 어떤 가식이나 연출을 찿기 힘든 진정함이 배어 있었다. 벅찬 감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일부 독일 국민들로부터 독일의 굴욕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결행하였다. 이 한 장면이 세계를 감동시켰고 인류는 만행을 저지른 전범국가 용서의 길을 텄다. 귀국 후 브란트는 의회에서 그 배경과 취지를 설명하고 의원들을 감복시켰다.

이후 독일은 전범에 대한 공소시효까지 폐지, 철저히 추적하여 재판에 회부하고, 대통령과 총리는 매년 국회연설이나 교서를 통해 인류를 향한 사죄를 관행화시켰다. 지구인은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전범국가의 오명을 서서히 걷어 주었다. 2005년에는 종전 60주년을 기념하여 독일국민의 진솔한 참회의 뜻을 새겨 베를린의 금싸라기 땅에 1기당 10여t에 달하는 2711개의 돌무덤 단지인 ‘홀로코스트 기념비’를 조성하여  깨달음과 뉘우침의 진정성을 보탰다.

참회해야 한다…그리고 용서를 

밉고 원망스러운 사람과 이웃하여 생활하고 지내는 게 보통의 어려움이 아니다. 불가에서는 원증회고(怨憎會苦)로 교훈한다. 미우나 고우나 한 해 1000억달러 이상을 서로 사고파는 교역이 발생하는 관계다. 아직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1할 규모다. 동북아의 안전과 평화를 담보할 군사적 협력도 절실한 상황이다. 일본에 있는 우리 동포도 100만을 헤아린다. 한국이 좋아 국적을 바꾼 일본사람도 1000명이 넘는다. 하루에도 수만명이 각각의 나라 관문을 드나든다. 일왕과 현직 수상이 한국을 방문하여 독립기념관이나 서대문형무소 터에 참배하여 진정한 사죄의 뜻을 기린다면 어떨까. 지증학적 이웃으로 ‘먼나라’라는 인식은 차츰 걷어질 것이라는 희망적 기대가 스친다. 용서의 손길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정승재 (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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