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다’의 이데아
‘틀리다’의 이데아
  • 경남일보
  • 승인 2012.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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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철 (한국국제대학교 홍보실장)

우리 말글생활에서 가장 혼동하여 잘못 쓰는 말 가운데 ‘다르다’와 ‘틀리다’가 있다. 비단 이뿐만 아니라 우리 말글생활은 세종대왕이나 주시경 선생이 통곡하리만큼 잘못 쓰는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다르다’와 ‘틀리다’는 단순한 맞춤법의 오류를 넘어 우리의 사고나 관념의 발로, 의식의 표상이라는 점에서, 그리하여 우리사회 곳곳에 그 부작용이 투영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 ‘다르다’의 반대말은 ‘같다’이고, ‘틀리다’의 반대말은 ‘맞다’이다. 확연히 그 의미가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는 ‘다른 것’마저도 모두 ‘틀린 것’이 돼버린다. 이제 ‘틀리다’의 오남용은 방송자막의 해프닝을 넘어 바이러스나 신드롬처럼 ‘다르다’를 감염하고, ‘다르다’는 별다른 백신도 없이 우리 말글생활에서 도태되고 있다.

‘다르다’와 ‘틀리다’와 같은 형태로 ‘이르다’와 ‘빠르다’가 있다. ‘이르다’의 반대말은 ‘늦다’이고, ‘빠르다’의 반대말은 ‘느리다’인데, ‘빨리 빨리’의 국민적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것인지, ‘빠르다’는 모든 것을 앞지르면서 ‘이르다’를 잠식해 버렸다. 그리하여 언제부터인가 국어사전에는 ‘빠르다’에 ‘이르다’의 의미까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언어에는 생명력이 있다고 한다. 비근한 예로 90년대 초 유행어 ‘따봉’이 있다. 당시 얼마나 유행했으면 브라질말로 ‘좋다, 적당하다’라는 뜻의 이 말이 ‘최다 단어·어휘’를 자랑하던 한 국어사전 개정판에 등재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리고 채 몇 년이 안돼 우리에게 잊혀져 버렸고, 최근에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문화유산으로 취급되고 말았다.

이와 같이 말글에는 생명력이 작용하고 있는데, 지금의 ‘틀리다’는 천적 없는 먹이사슬의 정점에서 ‘다르다’를 포식하고 있는 형국이다. 멀지 않아 국어사전은 ‘틀리다’에 ‘다르다’는 의미를 함께 설명하고, ‘다르다’를 ‘틀리다’의 비슷하거나 같은 말로만 기재하지나 않을까 싶다.

문제는 ‘틀리다’의 오남용이 강한 생명력을 얻어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반목, 차별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릇된 ‘틀리다’의 이데아는 ‘다르면 틀린 것’이고, ‘같으면 맞다’는 획일적이고 극단적인 논리구조를 가진다. 장애인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차별’한다든지,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좌빨’이나 ‘수구꼴통’으로 일도양단한다든지, 종교적 갈등이나 학문적 가치 등 우리사회 어디에서나 다른 것을 인정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는 주관적 시각에서 ‘차이’와 ‘다름’에 관대하지 못하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틀린 것이 되는 사회, 그리하여 획일성과 배척이 난무하는 사회는 다양한 창의성을 추구하는 21세기를 역행하는 일임에 분명할 것이다.

/ 방성철 (한국국제대학교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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