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70>
오늘의 저편 <170>
  • 경남일보
  • 승인 2012.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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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같아선 의사의 멱살을 끌고 가서 진석을 살려 놓으라고 협박이라도 하고 싶었다. 진석이가 나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고독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없습니다.”

 “피를 넣어주면 되잖아요?”

 주워들은 말을 무심결에 뱉어버렸다. 말을 해 놓고 보아도 꿈같은 이야기였다. 의료상식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 몸속에 피를 넣어주는 일이 엉겁결에 페니실린을 주사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를 것이라는 것쯤은 느끼고 있었다.

 절망감에 휩싸인 형식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어렵사리 피를 구한다고 해도 진석의 몸에 넣어줄 길이 묘연한 것이었다.

 “피 흘리며 죽어가는 군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의사는 벌떡 일어나며 화를 벌컥 냈다.

 “에엣?” 

 형식이도 반사적으로 목청을 높였다. 

 “한 방울의 혈액이라도 있으면 부상당한 군인들한테 보내겠소.”

 의사는 형식에게 눈을 부릅떴다.

 ‘이 한심한 작자야,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젊은이들의 울부짖음이 이 나라를 울리고 있어. 살기 싫다고 죽어버리겠다는데 왜 말려?’

 속으로 실컷 비웃고 있었다. 

 “군인들 목숨만 소중하고 누군 뭐 죽어도 된다는 건가요?”

 형식은 자신도 모르게 의사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상대가 놀란 눈으로 노려보기 전에 맥없이 놓아주었다.

 해는 하늘 한가운데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민숙은 또 손가락을 깨물어 진석의 입에다 피를 흘려 넣었다. 가슴의 움직임마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면 포기할 수 있었을까. 미약하게나마 숨은 쉬고 있는 것 같은데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 애가 다 녹아내리고 있었다.

 ‘민숙아, 제발 부탁이야. 이대로 날 보내줘.’ 

 이미 의식이 돌아와 있던 진석은 속으로 울고 있었다. 유치한 발상이지만 이대로 죽은 체하고 있기로 했다.

 “형, 제발 정신 좀 차려 봐요. 정신을 차려보란 말이에요?”

 마당에서 서성이고 있던 형식이도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너도 참 딱하다. 어쩌자고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민숙이한테 목을 매니?’

 형식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석은 주제 모를 안타까움에 잠겼다.

 “늦었다. 이제 그만들 해라.”

 화성댁이 준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늦다뇨? 뭐가 늦어요?”

 민숙이가 발끈했다. 

 “제멋대로 원풀이 했으니 좋은 데 가라고 빌어줄 수밖에??.”

 장례치를 준비를 서두르라고 덧붙였다.

 “싫어. 안 돼, 절대로 안 돼!”

 민숙은 양팔을 크게 벌리며 그 누구도 진석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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