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만에 고향서 맞이한 휴식같은 시간"
"오래만에 고향서 맞이한 휴식같은 시간"
  • 강민중
  • 승인 2012.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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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스케치투어 참여한 '추상미술 거장' 하종현 화백
“전투에 나간 사람이 갑옷을 벗고 고향에 잠깐 내려온 기분이야. 서울에 올라가면 다시 치열한 전투를 시작해야지.”

올해 77세의 나이로 화가로서 자신의 삶을 치열한 전투에 비교하는 한국 추상미술의 상징적 인물 하종현 화백이 2일 진주를 찾았다.

오는 11월에 열리는 ‘진주의 사계 아름다운 동향전’에 대비해 진주의 풍경을 스케치하는 제2차 스케치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엄밀히 말하자면 산청지역 출신인 그지만 진주에서의 생활이 많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고 진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하 화백은 한국미술협회이사장, 홍익대학교미술대학장, 서울시립미술관장 등 하나도 힘들다는 예술계 요직을 두루 거쳤다.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철인 4종 경기를 우수하게 마쳤다고 할까.

이제는 모든 직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와 작품에 매진하고 있다

“수십년간 뒤를 돌아볼 시간도 없었지.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

그는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했을 정도로 현재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기존 회화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버린다. 물감과 마포의 만남으로 빚어지는 하 화백의 ‘접합’ 시리즈는 1974년 처음 시작돼 2009년까지 이어지며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표한다. ‘접합’은 화면 뒤에서 안료를 밀어내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추상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올이 굵은 마포의 뒷 면에서 힘있게 누르면 천의 거칠고 성긴 틈 사이를 통해 앞으로 물감이 배어나오고 그 위에 긁어서 표현한다. 이는 마치 진흙과 거친 지푸라기로 바른 옛 시골집의 흙벽에 비유되기도 한다.

“난 체질적으로 과거에 했던 걸 되풀이 하는 것을 싫어해. ‘접합’은 재료와 작가, 작가의 행위가 일치하는 작품으로 서양에도 없는 표현기법이야. 물감을 덧칠하는 서양미술에 반론을 제기한 것이라고나 할까.”

최근에는 이 작업에 화려한 색상까지 더했다. 기존의 작품들은 너무 무거운 느낌으로 색의 표현이 부족했다.

“암울한 시대를 거치며 현실적인 부분이 반영되다 보니 그랬던 것 같아. 젊었을때 놓친것을 다시 찾아오는 작업이야. 그래서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있어. 원없이 색을 쓰지.”라고 호탕하게 웃는다.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실험을 거듭하며 바쁘게 살아온 하 화백. 치열하게 살아오며 고향을 잠시 뒤로한 만큼 미안함도 크다고….

“핑계 같지만 너무 바빴어. 고향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 만큼, 중앙의 예술계는 전쟁과도 같아. 그런 와중에 요직을 맡으며 행정업무 보랴, 작품도 하랴 정말로 앞만 보고 달려왔어.”

때문에 하 화백은 이번 진주에서 열리는 ‘진주의 사계 아름다운 동향전’전이 반갑고 고맙다.

오랜만에 찾은 진주, 뭉클한 가슴만큼 자연스레 지역화단 후배들의 따뜻한 충고와 조언도 이어진다.

“지역 후배예술인들이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옛날에 비하면 정말 좋은 세상이라는 말을 안할 수가 없어. 과거 모든 정보들은 일본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한정적이었는데, 지금은 인터넷으로 세상을 다 보잖아. 세계와 함께 실시간으로 움직이지. 지역의 한계는 벌써 무너졌어. 의지 문제지.”

하 화백은 예로 가수 ‘싸이’의 세계적 관심을 들기도 했다.

이어 “서울에 비해 지역 예술계가 느슨하다는 느낌이 들어. 좋은 세상과 기회 속에서 살고 있는 만큼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지. 따라하려 하지말고 자신의 언어로 작가 스스로 세종대왕이 돼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어.”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계속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하 화백은 “늙은 노장의 저력을 보여주겠다. 우리고장을 빛내고 다시 진주를 찾겠다”는 말을 전하며 치열한 창작의 전쟁터(?)로 다시 돌아갔다.

한편 하 화백은 대한민국 미술인상 본상,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프랑스문화훈장, 기사장, 옥조근정훈장, 서울시문화상, 예술문화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중앙문화대상,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공간미술대상전 대상, 신상회공모전 최고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강민중기자 jung@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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