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애타는 농심
태풍에 애타는 농심
  • 경남일보
  • 승인 2012.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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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여려 (결혼여성이민자)

태풍이 수확을 앞둔 들판을 할퀴고 지나갔다. 강풍을 동반한 ‘볼라벤’의 영향으로 낙과·비닐하우스 전도(顚倒) 등의 피해가 많이 발생했다. 강풍으로 피해를 준 볼라벤과 달리 덴빈은 곳곳에 물폭탄을 뿌렸다. 하루 걸러 닥친 태풍에 연타를 당한 남부지방은 엎친 데 덮친 격의 피해를 봤다. 떨어지는 사과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과수원은 볼라벤이 휩쓸고 가면서 탐스럽게 익어가던 사과 중 절반이 떨어졌다. 쓰러진 나뭇가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틀 만에 들이닥친 덴빈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비닐하우스 단지의 모습 역시 너무 참담했다. 애써 키운 고추가 쑥대밭이 된 모습을 보고 농민은 “자식처럼 키웠는데…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며 절망했다. 부모님과 시부모님 모두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 모든 것이 일거에 다 사라진 상태에 놓인 농민들의 아픔이 가슴에 와닿았다. 농촌마을에는 다문화가정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곳도 있다. 자연스럽게 결혼이주 여성들이 겪을 어려움도 떠오른다.

올 봄에는 104년 만의 극심한 가뭄에 논밭이 말라가면서 농심도 타들어 갔다. 시어머니께서는 “밭에 심은 어린 고구마는 뿌리도 내리기 전에 말라죽어 버렸다”며 하늘만 쳐다보셨다. 심지어 장마철 기간에도 비가 오는 둥 마는 둥하면서 저수지도 바닥을 드러냈다. 농민들은 봄에는 가뭄에, 수확기엔 태풍에 이래저래 걱정이 그칠 날이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각급 기관에서 피해복구 지원에 나서며 실의에 빠진 농민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 장병들은 휘어진 비닐하우스 철재와 찢어진 비닐 등을 일제히 정비했다. 이들은 강풍으로 떨어진 사과를 바구니에 옮겨 담고 비닐하우스 정비와 주택 울타리 보수를 지원했다.

어느 단체는 농가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풀숲을 헤치며 낙과된 대추를 수거하는데 앞장섰다. 옆집 아저씨는 “애지중지하던 대추나무가 태풍에 쓰러졌으나 일손이 모자라 일으켜 세우지 못하여 내년부터는 대추농사를 포기해야 한다고 낙담하고 있던 차에 도움을 받게 되니, 다시 대추농사를 지을 용기가 생긴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고향에서는 태풍을 알지 못했다. 간간이 뉴스를 통해 중국 남부지방의 물난리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와서 실상을 보고 새삼 놀랐다.

병충해 방제를 위해 아침 일찍 남편을 따라 들에 나갔다. 가을볕은 따사롭고 날씨는 쾌청하다. 들녁의 벼는 점차 익어가면서 넘실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고, 두루미 한쌍이 가을하늘을 한가롭게 날고 있다. 참새도 먹이를 쫓아 떼지어 옮겨 다녔다. 태풍이 두차례나 왔다고는 믿기지 않게 평온했다. 농부들은 고추도 따서 말리며 가을걷이에 나서고 있다. 호박고지, 박고지, 깻잎, 고구마순도 이맘때 거두고 산채를 말려 묵나물을 준비하기도 한다. 하늘을 보며 앞으로 큰비나 강한 바람없이 올해 농사를 잘 마무리하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

유여려 (결혼여성이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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