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만 (환경부 기획조정실장)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멀리서 손님이 찾아오면 마당부터 먼저 정갈하게 청소하고 손님을 맞이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경(敬)과 정성을 다하는 예(禮)가 바탕이 되는 우리의 손님맞이 풍습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번 세계자연보전총회는 유치과정에서부터 전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염원을 담았다. 제주도민을 비롯한 130만명의 유치지지 서명을 통해 2009년에 한국 개최가 확정됐다. 이후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 지원특별법’을 제정하고 민·관 공동 조직위원회를 출범하는 등 성공적인 총회 개최를 위해 적극적이고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세계자연보전총회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성을 쏟는 이유는 이번 총회가 기존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특별한 의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는 기후변화, 자원고갈, 서식지 훼손 및 생물 다양성 감소 등 심각한 환경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와 같은 추세라면 지구상의 약 3000만 종에 달하는 생물종은 향후 20~30년 이내에 25%가 멸종할 것으로 예측된다. 경남도의 경우에도 255개 내륙습지 중 습지보호지역은 4개소에 불과하는 등 우리나라도 환경보전에 더 많은 정성을 기울여야 할 상황이다.
이와 같은 환경문제의 기저(基底)에는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 근대 계몽주의·산업혁명 이후 자연을 지속적으로 남용해 왔던 성장만능주의가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하나뿐인 지구에서 인류가 앞으로도 지속가능하려면 모든 생명의 터전이 되는 ‘자연’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렇기에 동북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되는 이번 총회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자연과 인간이 다르지 않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자연과 공존을 모색하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다. 이번 총회의 주제를 ‘자연의 회복력(Resilient Nature)’으로 정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총회 과정에서 국제 환경리더들 간의 치열한 토론과 성찰을 통해 기후변화, 식량안보, 녹색경제, 생물 다양성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건강한 자연을 조성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환경보전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삼고 있다. 그동안 녹색성장을 추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총회에서 국제적인 환경논의를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
총회 역사상 최초로 개최국 이름을 딴 ‘제주 선언문’을 채택해 자연보전 관련 주요 이슈를 해결하는 전략으로 ‘보전활동 확대’, ‘자연에 기반한 해결책’, ‘실천적 지속가능성’ 등을 제시할 계획이다. 또한 방법론으로 매년 제주에서 세계리더스보전포럼을 개최해 자연과 공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성공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모든 국민이 쏟은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일부의 정치적 논쟁이나 생태근본주의적 주장은 잠시 미뤄두자. 마당을 정갈히 하고 손님을 맞았던 선조들처럼,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즐겁게 체험하고 소중한 기억을 담아갈 수 있도록 정성과 마음을 다하자. 세계는 지금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이번 총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때 세계인들은 우리를 녹색성장의 선도국가, 자연보전의 모범국가로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2008년 창원에서 ‘제10차 람사르(RAMSAR)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경험이 있다. 당시 경남도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높은 참여도는 회의에 참석했던 많은 해외 귀빈들이 높이 샀던 기억이 있다. 이번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도 다음세대를 이끌어 갈 새로운 패러다임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무엇을 실천할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연만 (환경부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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