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74>
오늘의 저편 <174>
  • 경남일보
  • 승인 2012.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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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숙은 진석에게 단단히 약속을 받았다. 용진의 첫돌이 지날 때까지는 절대로 나쁜 생각 같은 건 하지 않기로.

 이틀 뒤 형식은 서울로 돌아갔다. 그때까지 정자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부산에서 아주 자리를 잡아버렸다는 소문이 돌다간 피난길에 잘못되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된 후 학동의 가까운 곳에선 거의 총성이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퇴로를 차단당한 채 남한에 갇혀 버린 빨갱이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약탈과 살상을 일삼고 있었다.

 지리산은 빨치산이 되어버린 그들의 근거지로 돌변해 버렸다.

 지리적 여건으로 볼 때 지리산에서 발악하는 빨치산들이 학동에까지 지랄하러 올 수는 없었다. 뒷방의 진석은 민숙에게 주입식 교육을 시키곤 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갈 곳 없는 패잔병들이 숨어 지내기 안성맞춤이라는 것이었다.

 민숙은 목을 끄덕이며 산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곤 했다. 화성댁한테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 속에 해가 바뀌고 있었다. 작년 연말부터 중공군이 떼거리로 전쟁에  끼어들곤 했다. 작년 9월에 되찾은 서울이 또 적군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문간에 나가 서성이던 민숙은 뒷방으로 달려갔다.

 “서울에 가 봐야겠어요.”

 시어머니와 시누가 용진을 안고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간 애간장이 다 녹아버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좀 더 기다려 봐.” 

 진석의 속도 지금 타 들어가고 있었다.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민숙은 친정에 잠깐 갔다 오겠다고 하고 집을 나왔다.

‘으응? 아기 울음소리!’ 

 초저녁잠에 빠져 있던 화성댁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뒷산으로 뜸도 들이지 않고 들어갔다.

 아기 울음소리는 남산 골짜기에서 나고 있었다. 흡사 몽유병 환자가 되어버린 화성댁의 발걸음이 시커멓기만 한 그 골짜기로 당겨지고 있었다. 뒷산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만 남산 골짜기로 내려갈 수 있었다.

 ‘으으아악!’

 머리 위에 뭔가 떨어지는 바람에 기절할 둣 놀란 화성댁은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다. 절대로 산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던 딸의 말이 생각났다.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길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내 손바닥 안에 있는 길인데 못 찾아가랴?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다니까?’

 두려움에 휩싸인 화성댁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땔감을 긁으려고, 칡을 캐기 위해, 산열매들을 따기 위해 사시사철 어느 한 계절도 이 산에 오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자기 자신에게 주입시켰다.

 화성댁은 팔을 앞으로 내밀어 어둠속을 더듬었다. 나뭇가지가 잡히자 매달리듯 하면 발로 길을 더듬었다. 그녀는 아래쪽으로만 가면 학동마을이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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