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76>
오늘의 저편 <176>
  • 경남일보
  • 승인 2012.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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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이 길을 하얗게 밝히고 있었다. 화성댁은 큰길 건너에 있는 건넌 마을로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해산일이 오늘내일하는 새댁한테 가는 것이었다.

 ‘초산이라 늦어지는 건가?’ 

 화성댁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새댁의 집으로 발걸음을 당겨가고 있었다. 진통이 시작되었다면 그 신랑이 애를 받아주기로 되어있는 그녀에게 달려왔을 것인데도 더는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엇. 저 사람은!’

 정자나무 아래까지 온 화성댁은 저만치서 오고 있는 새댁의 신랑을 보며 눈을 번쩍 떴다.

 “어르신, 저희 집사람이 진통을 시작했습니다.”

 신랑은 신랑대로 화성댁을 보곤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요? 빨리 가요.”

 화성댁은 들뜨이는 마음을 눌렀다. 새댁의 배가 불러올 때부터 자청해서 산파를 맡겠다고 말해 두었던 것이다.

 신랑은 ‘예예’ 소리를 수십 번도 더 하며 화성댁의 손을 건넌 마을로 이끌었다.

 혼인한지 일 년 남짓한 새댁이 내놓고 수다를 떨 수도 없었겠지만 평소에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화성댁이 도착했을 때 새댁은 잠이 살짝 들어 있었다.

 “잠들고 하면 진통이 길어지는데 이일을 어쩌누?”

 잠든 새댁의 얼굴을 보며 화성댁은 실망스런 얼굴로 중얼거렸다.

 신랑은 마당에서 서성이며 너무 조용한 방안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달은 바보처럼 헤 웃으며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잠을 깬 새댁이 또 비명을 질러댔다.

 새댁에게 무릎을 세우도록 한 화성댁이 아기집 입구를 보았다. 문이 조금 열리고 있는 것을 보며 목을 의미 있게 끄덕였다.

 신랑은 손이 시린지 양손을 앞뒤로 비벼대며 언제까지나 마당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나절이 되어서야 새댁은 아들을 낳았다.

 해산어미에게 첫 미역국을 먹이고 난 화성댁은 태를 싼 작은 짚 뭉치를 들고 그 집에서 나왔다. 강으로 가서 그것을 물에 띄워 보내는 체하다간 집으로 발길을 돌렸고 곧장 부엌으로 갔다.

 ‘괜찮아, 괜찮다고. 그냥 버리는 거잖아? 그냥 버리는 것을 약으로 좀 쓰겠다는데 뭐가 어때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화성댁은 아기의 태를 솥에 넣고 적당량의 물을 부은 후 불을 지폈다. 눈앞에서 돋아나는 핏덩이의 모습에 움찔 놀랐다. 입술을 입안으로 욱여넣으며 양미간을 찌푸렸다.

 문둥병자가 아이를 잡아간다는 말은 예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그들이 아일 왜 데려가겠던가? 말하기는 뭣하지만 아이를 잡아가는 그 이유에 대하여 입에 담지 못할해괴한 소문이 나돌고는 했다.

 화성댁은 사위의 병을 낫게 할 수만 있다면 해괴망측한 소문이라도 붙들고 늘어질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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