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의 예고
4년 전의 예고
  • 양철우
  • 승인 2012.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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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우 기자
원효(元曉·617~686)대사는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를 통틀어 가장 개성이 강한 승려다. 스스로 파계를 했던 중임에도 고승으로 이름을 남겼고, 불교대중화의 선구자이면서 불교사상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원효가 30대 때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선진불교를 익히려 유학길에 올랐다. 당으로 가던 서해안의 바닷가에 이르렀는데, 밤이 늦어 한 토굴에서 자게 됐다. 원효는 자다가 목이 말라 주변을 더듬었는데, 마침 바가지에 물이 있어 시원하게 마셨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자신이 마셨던 물이 해골에 담긴 더러운 물이 아닌가. 원효는 그때 문득 깨닫고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의상만 당으로 보내고 자신은 길을 돌렸다. 이후 원효는 관심을 ‘저잣거리’로 돌려 귀족중심의 불교를 천민이나 농민에게 불교를 전파했다.

원효는 ‘추화군(신라시대의 밀양지명)’의 한 산골짜기에 죽림사(竹林寺)를 창건했다. 신라 흥덕왕 때 황면(黃面)이 재건해 영정사(靈井寺)로 개칭했는데 이 절이 바로 현재 밀양시 단장면 소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인 표충사다. 신라 흥덕왕의 셋째왕자가 마시고 문둥병을 고쳤다는 영정약수가 있고, 조계종 초대종정을 영임한 효봉스님이 공부하고 열반한 서래각선원은 동방제일선원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밀양에서는 불교의 성지요, 마음의 안식처요, 자랑거리다.

그런데 지난달 천년고찰 표충사에서 전 주지 재경스님과 수하의 모 사무장이 ‘표충사 1300년의 얼굴’에 ‘똥칠’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은 표충사 소유 땅 16필지 25만여㎡을 34억3000여만원에 몰래 매각한 후 태국과 필리핀으로 각각 줄행랑을 쳤다. 이 외에도 1억9756만 원의 공금횡령과 승인받지 않은 채무도 5억 원, 문화재구역 입장료 예치금을 승인 없이 사용한 비리가 확인되고 있다.

재경은 4년 전 표충사 주지로 임명됐다. 부임과 함께 표충사 홈페이지의 인사말에서 “자신을 바로 봄으로써 세상과 가까워지는 것이 불자의 도리이지만 밖을 살피며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는 것도 또한 불자의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라며 ‘세상과 가까워지고’, ‘밖을 살피며’,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는 것’을 강조했다.

원효는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해탈해 1300년 전 표충사에서 밀양의 중생들을 구원했다. 1300년 후의 재경은 인사말에서처럼 ‘세상과 가까워지기 위해’ 어려운 중생들에게 헐값에 사찰 땅을 내주고 횡령한 공금과 함께 ‘밖을 살피기 위해’ 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불자의 할 일을 위해 ‘감옥소의 새로운 인연’이 기다리는 것을 알고 포승줄에 묶인 채 나타날 것이다. 재경은 이미 4년 전에 예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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