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77>
오늘의 저편 <177>
  • 경남일보
  • 승인 2012.09.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어. 사윈지 웬순지 내 손으로 낫게 하고 말 것이다.’  

 그녀는 이빨을 으드득 갈았다.

 그렇더라도 남의 아이를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태반을 약으로 쓰면 절반의 효과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절반이 아니더라도 좋았다. 모기눈물만한 약효라도 볼 수 있다면 무조건 해야 했다.

 쪼그리고 앉아 아궁이의 불을 지켜보던 화성댁은 불현듯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마루 위의 선반에 있는 광주리를 내려 뚜껑을 열었다. 말려놓은 싸리나무 잎이 들어 있었다. 썩 좋지 않은 기관지 때문에 기침약으로 쓰기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화성댁은 싸리나무 잎을 양손으로 듬뿍 집어 태반을 달이는 그 솥에다 넣었다. 산과 들에 너무 많은 싸리나무는 피부병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김이 나기 시작하면서 약재 달이는 냄새와 구수한 냄새가 섞여서 나고 있었다. 

 화성댁은 가슴을 툭툭 치며 하늘을 불러대고 있었다.

 “어머니 드시지 않으시구요?”  

 냄비를 들고 선 화성댁을 본 민숙은 닭백숙이라도 해 온 줄로만 알았다.

 “김 서방 약이다.”

 “예엣?”

 민숙은 놀란 눈을 번쩍 뜨면서도 얼른 받아들었다.

 “하루에 세 번 정도 한 종지씩 먹이도록 해라.”

 화성댁은 바로 몸을 돌렸다. 

 “무슨 약인데요?”

 약재료에 대한 궁금증이 후끈 달아오른 민숙은 엉겁결에 그렇게 반문했다.

 “내 사위 병 낫게 하는 약이다.”

 화성댁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민숙은 냄비를 들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그 눈엔 급히 충전된 희망이 가슴의 설렘을 반사하며 일렁이고 있었다.

 “이게 뭔데?”

 책을 뒤적이고 있던 진석은 종지에 담긴 걸쭉한 액체와 민숙을 번갈아 보았다.

 “약이니까 빨리 드세요.”

 민숙은 먹으면 낫는다고 하더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으래?”

 진석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종지를 집어 들곤 단숨에 마셨다. 친구가 준 피부병 약을 한 번도 바르지 않고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던 그였다. 이제 와서 약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까닭을 그로서도 알 수 없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령님께 비나이다. 제발 우리 사위 낫게 해 주세요.’

 화성댁은 시도 때도 없이 줄기차게 주문을 외고 있었다.

 중공군이 떼를 지어 내려오는 바람에 신년벽두부터 서울은 또 적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민숙은 마을 입구에 있는 형식의 집으로 달려갔다. 서울집의 소식을 알 수 없어서 속이 자글자글 졸아붙고 있었다. 텅 비어 있는 집을 보면서 혼이 빠져버린 얼굴로 털썩 주저앉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