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놈, 똑똑한 놈
영리한 놈, 똑똑한 놈
  • 경남일보
  • 승인 2012.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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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운스님 (천진복지재단 이사장)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이나 쌀쌀해져 여름내내 발로 차내 찬밥 신세였던 홑이불을 더듬어 몸에 감는다. 그 뜨거웠던 뙤약볕도 자연이 주는 이치 앞에는 꼼짝 못하나보다.

그 뙤약볕을 등에 업고 등장했던 볼라벤이라는 고약한 놈 때문에 우리나라는 8월 하순에 한차례 물세례를 맞았다. 그런데 그때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 갖고 있는 스마트 폰 때문에 피해가 줄었다고 한다. 그 영리한 매체를 통해 태풍이 가져다 주는 강풍이나 호우의 피해법도 전해주고 바람이 불어오는 강도와 피해상황도 실시간으로 손 안에서 확인해가며 슬기롭게 대처했다고 한다. 참으로 기차게 좋은 세상이 온 건 확실하다. 그런데 그 좋은 기계가 사람들의 훈훈한 사이를 냉랭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 기계를 통해 중요한 내용이든 사소한 내용이든 문자로 주고받고 손 안에 네모난 걸 들여다보며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조차 없다. 그 영리한 기기(스마트폰)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정보와 앎의 갈증을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해주기에 부모와의 대화보다도 선호할지 모르나 그저 묻는 말에 대답만 할 뿐 살강스런 대화가 오고가지는 않는 것 같다. 이성간에도 주로 문자로 ‘다닥다닥다다닥’ 사랑을 전달한다고 한다. 참 재미난 세상이다. 일이건 사랑이건 빠른 전달에 효과가 몇 배로 날 수도 있겠지만 면대면으로 이해될 일이 오해라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 옛날에는 마음이라도 한 번 전할라 치면 편지 쓰고 편지봉투에 주소 쓰고 급할 때는 전보라는 제도를 활용하기도 했는데...

휴대폰의 진화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사랑의 표현방식도 많이 변화되었다. 눈부시게 산업화가 진행되고 아이스크림과 같은 달콤한 맛이 우리의 입맛을 바꾸었을 뿐더러 서구 사회에서 가족끼리 나누는 사랑한다는 말, 포옹, 입맞춤에 대한 감각 등은 근대화가 덜 이루어진 한국 사회에 발 빠르게 들어앉게 되었다. 자유로운 표현을 방해하는 수줍음, 쑥스러움 같은 감정은 어느새 촌스럽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가부장제적 사고에 젖은 아버지들은 이런 표현방식에 적응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사랑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 자체가 마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인 것처럼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대놓고 하는 것을 낯간지럽고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이제는 사랑한다는 말이 흘러넘쳐 광고카피까지 점령하는 것을 보면 실로 서구화의 흔적이 느껴진다.

또 하나의 태풍 ‘산바’가 우리나라를 노려보고 있다고 한다. 이제 손 안의 똑똑한 그 놈을 사용해서 멀리 계시는 부모님이 태풍으로 자식 걱정하시지는 않는지, 피해는 없었는지 멀리 있지만 마음만은 가까이에서 부모님을 걱정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마음의 문자 한 통 지금 보내드리자.

보운스님 (천진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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