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81>
오늘의 저편 <181>
  • 경남일보
  • 승인 2012.09.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된 밥에 재를 뿌릴 순 없어.’

 깨끗해지고 있는 사위의 얼굴을 떠올리던 화성댁은 급기야 몸을 돌려 아무 데로나 달아나기 시작했다.

 “떡을 할! 누가 사람잡아먹는데?”

 그녀들이 입을 모아 상말을 해댔다.

 등이 후끈 달아오름을 느끼며 화성댁은 체머리까지 흔들었다. 미군들이 다가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핸져업!(Hands up!;손들어!)”

 “어, 어 어맛!”

 키가 엄청 큰 남자 둘이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총구를 들이대는 바람에 너무 놀란 화성댁은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멀건 눈으로 올려다보다간 오이씨 같은 콧구멍 위로 쭉 뻗어 올라간 큰 코를 보며 그들이 코쟁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갤업(Get up!;일어나), 갤업, 갤업!” 

 코쟁이들은 덩치 값도 못하고 역시 알 수 없는 말을 방정맞게 볶아대듯 했다.

 “노, 노노노노, 빨갱이 노노노노??.”

 나팔댁의 말을 재빨리 떠올린 화성댁은 숨도 쉬지 않고 무조건 ‘노’라고 떠들었다.

 “빠?알?개?앵이?”

 입에 자주 담기는 싫었지만 말하기는 너무 쉬운 빨갱이라는 낱말 하나를 가지고  그들은 한참동안이아 떠듬거렸다. 

 “빨갱이 노. 빨갱이 노, 라니까요?”   

 벌떡 일어난 화성댁은 겁에 질린 얼굴로 또 ‘노’ 타령을 해댔다. 

 코쟁이들이 소리를 좀 낮추어 자기들끼리 마구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파란빛이 번쩍이는 눈으론 화성댁을 무섭게 힐끔거리기도 했다.

 그나마 화성댁의 귀에 걸려드는 말은 그들이 자꾸 지껄이는 '빨치젼(partisan)이라는 것과 ‘쓔어(sure)’라는 것뿐이었다. 그녀로선 죽었다 깨어나도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이놈들이 날 빨갱이로 보고 있는 거 아냐? 꼬부랑말에 ’예스‘라는 말도 있다고 했으니까 ’노‘하고 반반씩 써볼까?’  

 상황이 험악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화성댁은 벌떡 일어났다.

 “빨갱이 노, 빨갱이 예스, 빨갱이 노, 빨갱이 예스, 노??.”

 화성댁은 동공에 힘을 불끈 주며 자신 있게 떠들었다.

 ‘이쯤 되면 네놈들도 헛갈릴 것이다.’  

그녀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음을 주장하듯 목을 있는 대로 치켜들곤 그들을 보았다.

 기다렸다는 듯 코쟁이들이 정확하게 한걸음씩만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곤 총을 일제히 치켜들더니 화성댁을 겨냥했다.

 ‘이놈들아, 죽일 테면 얼마든지 죽여 봐. 죽여보라니까?’

 앞뒤 없이 입이 얼어붙어버린 화성댁은 자신도 모르게 양팔을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눈은 질끈 감아버렸다. 아무리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