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젖줄, 대한민국의 습지를 찾아서 <1>
생명의 젖줄, 대한민국의 습지를 찾아서 <1>
  • 이은수
  • 승인 2012.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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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재약산 사자평 산들늪

 

영남알프스·삼남의 금강이라 불리며 산세가 수려한 재약산(1189m). 정상일대와 서쪽에는 거대한 암벽이, 북쪽에는 얼음골이, 동쪽에는 사자평이라는 드넓은 고원이 펼쳐진다. 사자평 산지습지는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 정상부(해발 약 750~900m)에 위치한 고산습지로 2006년 말 일대 0.58㎢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특히 신선한 공기와 주변의 자연경관이 빼어나며 담비·삵 등 주요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배수로가 습지로의 물흐름을 차단하여 육지화를 초래하고 있다. 또한 국내 최대의 억새 평원과 맞닿아 주변지역에 등산객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우수한 자연환경 또한 훼손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대로 놔두면 국내의 대표적인 고산습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높아지고 있다. 이에따라 국내최대의 습지복원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속세를 벗어나 사자평 찾아가는 길

사자평 습지는 해발 700m 이상의 고산에 위치해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다. 특히 최근의 잦은 비로 인해 산에 오르지를 못하고 다만 자연이 허락하기를 기다렸다. 힘들게 산에 도달해도 정상부에서 짙은 안개가 내려오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14일 오전 산행을 시작했다. 전날 비가 내렸고, 안개가 가득하다는 현지의 연락에도 마냥 미룰 수 가 없어 출발을 감행했다. 다행히 날씨는 점차 좋아졌다. 차장 밖 밀양의 풍경은 아파트와 너른들판, 그리고 강이 교차하며 도시와 농촌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밀양강은 물길을 따라 이백 오십리를 제모습을 잃지 않고 흐르는 것이 4대강 사업으로 재단된 낙동강과 대조를 보였다. 너른 강 곳곳에 펼쳐진 웅덩이 같은 수변공간은 편안하게 다가와 쉼을 제공한다. 재약산 아래 마을에는 사나운 태풍을 이기고 밀양의 특산물인 대추나무가 길가마다 주렁주렁 달렸다. 곧이어 천년고찰 표충사가 나타났다. 유명사찰과 영남알프스의 멋진 등산코스, 사철 시원한 계곡이 흐르는 주변에는 유원지가 일찌기 발달했다. 우리 일행은 목을 축이기 위해 절에 들어가 물 한모금을 마셨다. 탐욕에 눈 먼 사찰주지의 잠적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달리 경내는 불자들이 기도에 정진하며 조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산에 오르기 전에 인근 맛집에서 산채비빔밥과 해물파전으로 배를 든든히 채웠다. 이 곳은 전도연과 송광호가 영화(밀양)를 촬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본격적인 채비를 하고 위를 보니 사자평은 보이지 않고 높은 산만 즐비하게 치솟아 있다. 바위로 깍아지른 산도 지나며 구불 구불한 산길을 따라 찰랑찰랑하게 계곡 물흐르는 소리를 벗삼아 한참을 오르니 속세에 물든 마음도 조금은 씻어지는 것 같다. 거대한 암벽을 타고 내리는 물줄기는 폭포가 되고 물이 머무는 곳은 소와 담이 되어 선경을 연출한다. 수풀에 푸더득 소리가 나 쳐다보니 큰매가 들짐승을 사냥했다. 옥류동천을 거슬러 오르며 흑룡폭포, 층층폭포를 지나 하늘이 가깝게 보이고 산아래 마을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산속 깊이 들어가니 마침내 사자평에 도착했다.

사자평 고산습지인 산들늪은 밀양시 단장면 재약산 7부 능선 동남동쪽 사면의 고원에 위치하고 있고, 이탄층이 발달되어 있다. 삵 등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동물과 멧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아무르 줄장지뱀, 복주머니 난, 큰방울새난, 천마 등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소중한 자연자산이다.

◇사자평의 비극(군사용 작전도로 개설)

가파른 고개를 넘어서니 억새풀이 가득한 대평원이 나타났다. 사람 키를 넘는 식물이 없으니 시야에 막힘이 없다. 지정된 습지보호구역은 축구장 300개와 맞먹는 규모다. 산 정상에 이렇게 너른 습지가 있다니 놀랍기만하다. 감시초소에 다다르자 주민감시원 이병주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자평을 떠나지 않고 산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망대에 서서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사자평을 바라다 본다. 화전민은 이곳에서 염소를 키우고 경작을 하며 삶의 터전을 일궜다. 고사리분교라는 학교까지 있던 사람이 살던 곳 이었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보기가 어렵다. 본격적인 탐사를 위해 등산화 대신 장화를 신었다. 푹신한 느낌이 들어 지면을 보니 대지가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는 것이 습지가 분명했다. 짐승이 보금자리를 튼 흔적과 삵의 배설물도 눈에 띄었다. 돼지풀, 애기수영, 환삼덩굴 등이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북쪽과 동북쪽에 형성된 초지에 솔새,억새, 오리새 등이 서식하고 있다. 건너편 숲에는 까치도 보였다. 현지조사 결과, 고산습지 및 주변에는 동·식물 총 457종류가 확인됐다. 수생식물로는 왕미꾸리광이, 달뿌리풀, 참비녀골풀 등 27종이다.

하지만 사자평 한복판에 소나무가 자생하는 등 습지 보전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었다. 노랑무늬붓꽃. 천마 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존재가치가 희소하여 환경변화에 도태 또는 멸종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생지복원이나 개체증식 등의 적극적인 보전이 필요하다.

사자평의 비극은 과거 군사용 작전도로가 현 사자평 고산습지 보호지역내에 북동-남서 방향으로 개설되면서 시작됐다. 특히 2003년 태풍 ‘매미’의 집중호우 및 홍수로 작전도로를 따라 우곡(雨谷)이 형성됐다. 환경부 조사결과 빗물에 패어 생긴 골짜기가 지하수의 흐름을 교란하여 습지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태풍과 폭우 등으로 등산로가 침식되어 2008년 대규모 사방사업(사자평 침식지 복구)을 했다. 그렇지만 거대공사에도 불구하고 배수로를 따라 지표수 등이 유출되어 주변 토양의 육지화는 가속화 됐다. 또한 등산객에 의한 훼손 및 과거 중장비 진입에 따라 침식현상이 발생, 보호지역내 등산로가 형성되어 등산객에 의한 답압(밟기) 현상으로 억새 등의 활착을 어렵게 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습지복원 프로젝트 추진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올해 5억원의 예산을 확보하는 등 2016년까지 총 40여억원을 투입해 재약산 고산습지 ‘사자평’생태복원 사업을 추진한다. 이는 국내 최대규모의 습지복원사업에 해당한다. 김상배 청장은 “배수로 등 인공구조물에 의한 물흐름 차단·등산객에 의한 답압 등으로 인해 훼손된 지형 및 식생의 복원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낙동강청에 따르면 복원 방향은 습지보호지역 내 우선복원→확대지정→외부복원 순이다. 이와관련, 지난 13일 복원계획 실시설계 최종보고회를 가졌다. 올해는 실시설계 완료 및 모니터링시스템을 구축하고 내년부터 배수로 및 탐방로 복원, 식생복원이 본격 추진된다. 복원공사는 배수로에 의해 차단된 습지로의 물흐름을 정상화하기 위한 원지형 복원, 등산객의 답압에 의해 침식 훼손된 지역 복원, 참나무 등 교목 제거 및 억새 식재, 습지보호지역내 방치된 철조망 등 쓰레기 수거 등이다. 이를 위해 토지소유자인 표충사 측과도 협조를 구해 보호지역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중에 있다.

 

낙동강유역환경청 신재성 자연환경과팀장

“사자평 생태복원, ‘건전한 물순환복원’원칙”

 

“배수로 및 생태복원은 2차적인 사면재해와 생태교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계적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낙동강유역환경청 자연환경과 신재성 팀장은 사자평 생태복원 사업의 최종방향은 ‘습지생태계 복원을 위한 건전한 물순환복원’임을 강조했다.

그는 “왜곡된 사자평의 유출기구를 복원할 수 있는 사면복원사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뿐아니라 습생지역과 주변식생과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보조 식생패치를 구축하고 식생간 연결을 하여 경관의 생태적 기능을 복원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습지로의 물흐름을 차단해 습지보호지역의 육지화를 초래하는 배수로를 복원하는 한편 등산객에 의해 훼손된 등산로를 복원한 후 추가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탐방유도로(목도)를 설치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습지환경 변환관찰을 위해 장기모니터링시스템(수문관측장비·자동기상관측장비 등)을 구축, 올해 창녕군으로 이전 예정인 국가습지센터와 공동으로 복원 전·후의 습지생태계 변화관찰을 실시할 예정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이같은 복원사업을 위해 지난해부터 연구용역(창원대학교)을 실시했으며, 관계기관·생태복원 전문가·표충사 등과 연계해 사자평을 현지 방문하고 최종보고회를 겸한 토론회를 개최해 올해 복원사업의 첫발을 내디뎠다. 신 팀장은 “사자평의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보전과 복원을 위해 가급적 중장비 작업을 최소화하고 인력 위주의 작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국내에 선례가 없어 어려움이 있지만 고산습지 관리의 새로운 롤모델이 되도록 최선을 노력을 다하겠다”며 등산객들의 출입자제를 당부했다. 글=이은수기자 eunsu@gnnews.co.kr 사진=황용인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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