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시끄러움을 훌쩍 벗어나다
세상사 시끄러움을 훌쩍 벗어나다
  • 경남일보
  • 승인 2012.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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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합강정과 반구정

반구정.

매스컴 속의 세상사가 너무나 매스껍고 어지러워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TV뉴스를 볼라치면 인면수심의 성범죄 추악성이 극을 넘어서 매스꺼움에 구역질이 밀려오고, 신문을 찬찬히 읽으면 음흉한 돈거래가 대소고하를 불문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거지니 탄식이 절로 나고, 큰일 해 보겠다고 마음에 없이 각처를 들쑤시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끄나풀을 놓칠세라 벌떼처럼 달라붙어 앙당그러지는 처절한 모습들이 그렇고, 세상은 가는귀가 어두워진지가 오래라서 간절한 기도소리는 허공으로 흩날리고 스승은 마음 둘 곳 없어서 신선의 그림자를 따라 이미 등을 돌렸는데 염체 없는 이들은 곳곳을 쏘다니며 숨겨버린 진실 앞에 그래도 밤마다 홀로 겸연쩍어 잠 못 드는 몸부림이 눈에 선 하여, 일렁거리고 출렁거리는 흔들림을 보고 섰으려니 선창에 홀로 선 속절없는 객이 되어 갈매기 날개짓을 따라 길을 나섰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는 들리지 아니하고 이슬비 내리는 꿈속에 한가히 갈매기만 날더라는 반구정의 주련 글귀가 생각나서, 남해고속도로 함안 요금소를 나와 대산면 장암리를 찾아, 함안들 끝자락의 처녀뱃사공의 시비를 지나 작은 고개를 넘었다. 올망졸망한 작은 마을들이 가을 들녘으로 옴쏙 내려앉은 듯이 평화롭고, 질펀하게 깔린 볏논에는 고개 숙인 벼들이 가을 햇살을 한가득 받으며 여물어 가고 태풍 볼라벤과 덴빈이 남긴 겉살의 상처는 흔적 없이 아물어 고요함만이 바람결에 넘실댄다. 한번 갔던 길이건만 서촌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곧장 가다가 구룡정사거리에서 직진을 하고부터 처음처럼 헤맨다. 

시골길은 길 찾기가 예사롭지 않은데 오가는 사람조차 뜸하여 느긋함을 터득하지 않으면 풍광과도 멀어지고 풍류와도 작별이다. 잘못 든 길에서는 돌아설 때를 익히고, 둘러가는 길에서는 어리석음을 깨닫고, 지름길에서는 오만함을 돌아보며, 갈림길에서는 신중함을 배워야 한다. 구룡정사거리에서 직진하여 4~500m에서 표지판은 없어도 좌회전을 하여 장암리보건진료소를 찾으면 왼편 길로 곧장 가서 장포마을을 지나면 강둑이 막아선다. 남강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곳의 강둑이다. 여기서부터 강둑길이 아닌 좁다란 임도를 따라 쉬엄쉬엄 오르면 낙동강이 벼랑아래에서 멈춘 듯 소리 없이 흐르고 강 건너 멀리 창녕 땅 낙동강 둔치와 들녘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낙동강 기슭 산자락에 위치한 합강정.
경사가 급하지는 않으나 이정표도 안내판도 없이 우거진 잡목의 수림 속으로 들어만 가는 길은 이대로 가다간 정자는커녕 닿는 곳이 있기나 할지가 걱정스런 길이다. 모롱이를 돌때마다 강은 점점 벼랑 아래로 자꾸만 깊어지고 길은 산중턱을 돌아 고도만 높이는데 합강정과 반구정은 있기나 하는 건지가 궁금해 질 무렵에야 합강정을 알리는 표지판이 섰다. 차를 세워두고 안내판의 지시대로 갈지자(之)로 강 쪽으로 내려가는 길 모롱이에 닿자, 작은 산골짜기 끝자락에서 낙동강 기슭의 벼랑을 왼 무릎 아래로 나직하게 깔고, 솟을대문을 앞세운 기와지붕의 합강정이 그림 속 같이 고즈넉이 앉았다.

임도에서 이어진 출입구는 합강정 당우 상봉정 옆으로 들어가 마당으로 이어지고 솟을대문인 낙원문은 낙동강으로 내려서는 출입문인 것으로 보아 창건당시부터 배산인 용화산의 임도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창녕군 남지에서 나룻배를 타고 들고났음을 짐작케 한다.

350여 수령의 은행나무는 1633년 간송 조임도선생이 49세에 합강정을 세우시고 심었다면 연치가 어긋남이 없는듯하며 “학문을 배움에 있어 겸손하게 가르침을 받들고 용감하게 나아가 행하여 도에 이르게 하고 느긋하게 덕을 쌓아라.” 하셨으니 강우강좌로 낙동강을 경계한 학맥의 어우름에서 남명과 퇴계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생육신 어계 조려선생을 5대조로 두신 선생의 지조 또한 남달라 벼슬을 줘도 받지를 아니하신 함안 조문의 최고의 학자이시고 만인의 스승이신 징사이시다. 정자의 대청마루에는 합강정사, 망모암, 와운헌, 사월루의 편액이 세월의 때가 묻어 고색창연한데 선생의 유지가 지엄하게 와 닿는다.

칠월칠석 무렵 달이 뜨면 달빛의 꼬리가 낙동강에 길게 드리워져 월주의 장관을 볼 수 있다니 후일을 기약하고 반구정을 찾아 발길을 돌렸다. 저 멀리 남지철교가 그림같이 아련한 산길을 걸어 이내 닿은 옴쏙한 산기슭 아래로, 우람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기와지붕을 가지자락으로 그늘을 지워주며 당당한 자태로 낙동강을 굽어보고 섰다.

용화산의 발치기를 감돌아 흐르는 낙동강을 풀어내며 펑퍼짐한 기슭에 자리잡은 정면 4칸의 크지 않은 기와집이 근작의 관리동을 옆에 끼고 나직하게 앉았다.

반구정은 두암 조방선생이 정유재란을 끝맺고 칼을 씻고 활을 풀어 세상사의 자질구레한 소리를 멀리하며 여생을 보내려고 낙동강 웃개나루에 세웠던 정자다. 두암 선생은 형 조탄과 함께 1592년 곽재우장군과 창의하여 의병을 일으켜 정암나루와 기강나루에서 크게 전공을 세웠고 멀리 금오산성까지 나아가 승전하고 화왕산성을 끝내 지켜내신 의병장이다. 반구정은 이후 강섶이 침식하고 당우가 퇴락하여 1866년 근접한 옛 청송사 자리로 옮겨왔고 문장가 성재 허전이 기문을 지었다.

반구정 편액이 정각에 비해 커서 무겁게 달린 듯 하고 네 기둥의 주련은 옛 사람의 심사를 말없이 일러준다. 수령 650년의 느티나무 아래에 근작의 육모정 정자는 근엄하게 서 있다. 두암선생의 후손이신 성도 옹께서 짓고, 호연지기를 줄여 ‘호기정’이라고 편액을 손수 써서 붙였다고 한다. 정자에 앉아 절경의 운치에 젖어 있자니 온갖 세상사가 덧없음이 느껴진다.

/지역문제연구소장

▲합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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