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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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2.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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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식 (진주 선학초등학교 교장)
눈앞이 캄캄할 때가 있었습니다. 높다란 벽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뒤돌아 외쳐 불러 보았습니다.“아버지!”

아버지, 어릴 때 가장 닮고 싶은 미래의 나의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면 목이 아프고, 목말을 타고 내려다보면 어지러울 정도로 키가 크고, 한 손으로 도끼질을 하는 천하장사, 가족을 부양하는 경제인, 무슨 어려움이든 척척 해결하는 해결사,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 세상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보호자, 함께하면 언제나 든든한 동반자, 부르면 언제나 달려오는 후원자, 불안·걱정·근심을 없애 주는 치료사입니다. 물어 보면 답을 못하는 게 없이 다 알고 거기에 푸근한 미소와 빵 터지는 유머까지 하나하나 닮고 싶은 모습입니다. 모르는 것이 없고 하지 못하는 게 없는 아버지는 그분의 능력과 비슷합니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신입니다.

어릴 때는 놀이를 하면 하루종일 해질 때까지 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지금껏 억척같이 버티는 힘도 놀이를 통해 훈련된 체력이 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항상 저녁 먹으라는 말을 듣고서야 뛰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놀이도구는 뭐든 집에서 만들어 썼습니다. 낫으로 몇 번 쓱싹 문지르면 팽이가 되고, 망치로 몇 번 뚝딱거리면 썰매가 되었습니다. 마치 마이다스의 손처럼 어떤 물건이라도 아버지 손에만 닿으면 원하는 모습으로 바뀝니다.

장마철에 가끔 학교 가는 길의 다리가 무너질 때면 동네 어른들이 징검다리가 되어 아이들을 하나하나 옮겨 건너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물살이 가장 센 강 한 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던 당당한 모습이 생각납니다. 물이 더 많이 불었을 땐 책 보따리를 등에 맨 우리들을 목말을 태워 건너주곤 하였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바탕이 되는 작은 지식도 아버지의 인간 징검다리가 그 출발이었습니다.

하루 일과는 기도로 시작하십니다. 무슨 간구할 일이 그리도 많으신지 새벽마다 끊임없이 기도하십니다. 이만큼 누리며 사는 지금의 복도 아버지의 기도 덕분으로 생각됩니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어렵고 힘든 생활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건 아버지의 유머 덕이었습니다. 책에서 배운 것은 적을지 몰라도 삶에서 얻은 통찰로 한순간에 온 집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걱정과 근심 덩어리는 산산조각으로 부숴 날려 버립니다.

아프거나 무서움에 떨 때 넓은 등에 업혀 가만히 기대면 어느새 평안해집니다. 지금도 힘들고 지칠 때면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아버지의 드넓은 등이 그립습니다.

눈앞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높다란 벽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뒤돌아 외쳐 불러 봅니다. “아버지!”

/정호식 (진주 선학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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