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남긴 잔인한 한가위
태풍이 남긴 잔인한 한가위
  • 경남일보
  • 승인 2012.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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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식 (경남도의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으레 추석만 되면 들어온 말이다. 풍성한 느낌과 안정적인 어감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구절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중추절, 조금 있으면 시작될 민족의 대이동은 벌써부터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귀성객들의 분주한 명절 준비와 고향사람들의 손님맞이가 사람 사는 맛과 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올해는 물가가 걱정이다. 흔치 않은 겹태풍 ‘볼라벤’과 ‘덴빈’, ‘산바’이 우리나라를 할퀴고 가면서 온통 상처투성이다. 태풍의 위력은 도내 장바구니 물가상승으로 이어졌다.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이 시장이나 마트를 찾고서는 치솟은 물가에 혀를 내두른 채 쉽사리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건을 들었다가도 가격을 보고 다시 내려놓는가 하면 일부러 발품을 팔면서까지 값싼 물건을 찾는 경우가 그런 예다.

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태풍피해로 일부 채소가격은 한달 전에 비해 3배 이상 올랐다. 과수원에서는 낙과가 수두룩해 과일값도 전체적으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때깔 고운 농산물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다 설령 찾았다 하더라도 한숨만 불러온다. 한우 등 육류값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수산물도 어획량이 줄면서 30% 이상 가격이 인상된 상황. 현재 갈치가격은 중간 크기가 8000~9000원 선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000원보다 2배 정도 올랐다. 멸치도 마찬가지다. 볶음멸치의 경우 지난해 2만원대에서 올해 3만5000원대에 팔리고 있다. 명절 대표생선 중 하나인 조기도 중간 크기가 7000원 선으로 지난해보다 50%가량 올랐다고 하니 씁쓸하기가 그지없다.

장바구니 물가가 상승하면서 유통업계의 판매형태도 확 바뀌었다. 이른바 ‘반쪽 상품’, ‘미니 상품’ 등이 진열대 곳곳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이 같은 전략으로 판촉에 열을 올리는 현실이다. 전통시장이나 동네 슈퍼마켓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예전처럼 고가의 진열품을 전시하는 것은 무리수라고 판단해 아예 반쪽짜리 채소나 떨이상품 같은 저비용 고효율 물건을 전진 배치하고 있다. 우리 동네 슈퍼마켓 사장은 “추석 대목, 명절 분위기는 다 옛날 말이다. 올해 대형 태풍이 잇따라 몰아쳐 채소나 과일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팔려고 내놓아도 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래저래 걱정이다. 추석 이후 물가도 우려되고 이런 악조건이 설 명절까지 이어지지는 않을까 좌불안석이다”며 긴 한숨을 내뱉고 있다.

추석 등 명절이 갖는 경제성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앞서 이야기했듯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면 이에 비례해 물류비용도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가족들이 움직이면 어디서든 식사는 해야 되니 식당가에는 사람이 몰려들면서 호황이 되기 마련이다. 또한 사람들을 만나려면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하니 유통가도 북적일 수밖에 없다. 고향 동우회다, 동창회 모임이다 각종 모임이 우후죽순처럼 펼쳐지니 그 비용도 엄청나게 오갈 것이다. 요컨대 명절은 우리나라의 자금회전율을 극대치로 끌어올리는데 주효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명절 경제가 위축되고 있다. 태풍 때문은 아니지만 기업체의 자금난도 덩달아 악화되고 있다. 경남은행은 추석을 맞아 ‘추석특별 경영안정자금’ 3000억원을 마련했다. 경남과 부산, 울산 등 전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시의적절한 처방을 내놓은 것으로 이번 추석특별 경영안정자금은 1.0%~1.5%P 금리우대 혜택과 함께 운전자금 한도산출 생략 등의 대출절차 간소화가 적용된다고 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자금난 경감을 위한 노력이 빛을 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겹태풍 이후 맞는 우리 고유의 명절 추석이 많은 생채기로 그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다. 장바구니 물가가 많이 올라 주부들을 힘들게 하고 경기도 경색돼 기업인들과 근로자들의 어깨를 억누르고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말이 가슴에 잘 와닿지 않는 현실이 야속하다. 그래도 힘을 내자. 오히려 이럴 때 위기의 명절을 맞는 참지혜를 스스로 발굴해 보자. 명절을 앞둔 지금, 필자는 일부러라도 전통시장을 찾아보고자 한다. 상인들의 거친 손을 잡고 미소를 나눌 것이다. 좀 비싸도 명절이니까 기쁜 마음으로 물건을 사야겠다. 작은 여유가 넉넉한 즐거움으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희망, 풍성한 한가위! 결국 우리 마음에 알알이 달려 있는 게 아니겠는가.

박동식 (경남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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