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84>
오늘의 저편 <184>
  • 경남일보
  • 승인 2012.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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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숙이 누나 피난 안 나왔단 말이에요?”

 형식이도 어지간히 놀랐다. 

 “으응, 형식아, 용진이 어떡하면 좋으니? 아무 일 없겠지? 그렇지?”

 정신을 좀 차린 민숙은 형식의 손을 양손으로 부둥켜 잡았다. 

 “아무 일 없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주제 모를 행복감이 휩싸인 형식은 멋쩍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언제 서울 갈 거니?”

 당장이라도 형식의 등을 서울로 떠밀 기세로 물었다.

 “에엣?”

 형식은 손을 빼냈다. 마음 같아선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 외로움이 뼈에 턱턱 부딪쳐 오고 있었다.

 “서울 가면 우리 용진이 어떻게 지내고 있나 꼭 좀 알아봐 줘, 응?” 

 “그, 그럴게요.”

 맥없는 목소리로 대꾸하며 형식은 몸을 돌렸다.

 “형식아, 부탁할게. 꼭 좀 응?”

 민숙은 간절한 염원이 담긴 목소리로 형식을 또 부르고 있었다.

 새벽달이 바보처럼 헤 웃으며 형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난히도 파란 겨울의 먼동 속으로 그는 털레털레 걸어가고 있었다. 눈앞에서 돋아나는 딸 순희의 얼굴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텅 비어 있는 시골집으로 들어간 형식은 애써 아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린 딸을 데리고 피난지에서 고생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마음이 아파오지는 않았다. 다만 무척 미안할 따름이었다.

 형식은 아내의 방 방문을 열었다. 아내의 체취 대신 냉기가 훅 밀려왔다.

 ‘끝이야. 이젠 정말 끝이란 말이다.’

 아내의 얼굴 앞으로 다가오는 민숙을 보며 그는 입언저리를 부르르 떨었다.

 ‘누난 처음부터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어.’

 담 옆에 세워둔 자전거로 발걸음을 옮겨놓던 형식은 자신의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박았다. 물리적인 아픔 때문인지 두 눈에선 눈물이 찔끔 새어나왔다.

 ‘허허허, 서울 언제 가냐고? 난 죽어도 좋다는 거야 뭐야? 어떻게 적군의 소굴로 들어가라고 할 수 있어?’

 그의 입에선 아픈 웃음이 자꾸만 나오고 있었다.

 ‘내가 왜 서울에 가? 안 가. 안 간다고.’

 눈앞에서 돋아나는 민숙의 얼굴을 보며 대들듯 중얼거렸다. 답답하다는 얼굴로 양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툭툭 쳤다.

 ‘동숙이 누난 서울에서 뭐하고 있는 거야?’

 여주댁과 동숙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들을 원망했다.

 ‘내 딸을 찾으러 가야지. 그래, 그래 내 딸을 찾으러 가는 거야.’ 

 형식은 자전거에 올라탔다. 화성댁의 집을 지나갈 땐 소리를 죽여 심호흡을 했다.

 ‘내가 왜 여기로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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