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85>
오늘의 저편 <185>
  • 경남일보
  • 승인 2012.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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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대고갯길에 올라서서야 형식은 서울로 향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남으로 향하는 피난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바보야, 속 차려. 우리 순희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조차 모르는 주제에 지금 남의 아들 걱정할 때야?’

 그러나 그는 피난민들을 거슬러 서울로 계속 올라갔다. 국군이 보이면 순희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대며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체했다. 적의 수중에 있는 서울로 돌아간다는 느낌을 주면 공연한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1월 초의 혹한을 만난 한강은 잔뜩 얼어붙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덕택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짐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한 피난민들이 얼음 위로 건너고 있었다.

 ‘혹시, 피난을 떠난 걸까?’

 진석의 서울 집에 도착한 형식은 굳게 닫힌 대문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형식은 몸을 돌렸다. 지금도 피난민들이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여주댁 일행과는 서로 길이 엇갈릴 수 있었다. 차라리 그들과 길이 엇갈렸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골목길을 빠져나가던 형식은 도도 몸을 돌렸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자석처럼 뒤에서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형식은 또 대문을 두드리는 대신 담을 넘었다. 썰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방마다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이불 하나 깔려있지 않은 방바닥을 굳이 손으로 짚어보았다. 미지근한 느낌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피난을 떠났어. 그래, 틀림없어.’

 안도의 한숨을 쉬며 형식은 머리를 끄덕였다.

 “어머니, 놈들이 들어왔나 봐요.”

 동숙이가 모깃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쳐 죽일 놈들!”

 용진을 안고 있던 여주댁도 낮은 소리로 대꾸했다. 할머니의 품에 안긴 용진이는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다락방에 올라가 있었다. 어두침침한 벽장에서 계단 없이 올라가도록 일부러 만들어놓은 것이어서 눈에 잘 뜨이지 않았다. 벽장 안도 사용한지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하기 위해 벽지를 이리저리 찢어놓았다.

 비어 있는 집처럼 꾸미기 위해 그들은 방에 불도 지피지 않았다.

 안방에서 막 나오던 형식은 흠칫 놀라며 목을 천정으로 들었다. 별안간 쥐들이 천정 속에서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뭐가 뛰면 뭐가 뛴다더니 빨갱이들 지랄하니까 쥐새끼들까지 지랄발광을 다하고 자빠졌네.”

 숨을 죽이고 있던 여주댁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투덜거렸다.

 “쉿, 아직 있나 봐요.”

 동숙은 어머니를 흘겼다.

 쥐 소리에 놀란 용진이가 잠에서 깨고 말았다. 찜부럭거리며 잠투정을 시작하기 전에 여주댁이 재빨리 입을 막았다. 이불까지 뒤집어씌웠다.

 마루로 나가던 형식은 방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분명 아기의 울음소리가 귀에 닿았던 것 같았다. 쥐들은 조용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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