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외남 (사천 대방초등학교 교사)
추분이 지나자 언제까지나 맹위를 떨칠 것 같은 무더위도 한풀 꺾였다. 지난 무더위의 기억을 되살릴 만큼 한낮의 햇살은 아직도 따갑지만 아침저녁으로 긴소매의 옷을 필요로 할 만큼 기온이 뚝 떨어져 계절의 변화가 실감난다. 기온의 변화에 민감한 것은 사람보다는 오히려 자연이다. 자연은 계절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짙은 녹색이던 산과 들이 점차 연갈색으로 변하고 이른 아침 안개 끼는 날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얼마 전에 남부지역을 휩쓸고 간 태풍 ‘산바’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직도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남강에는 여전히 황톳빛 흙탕물이 흐르고, 망진산 산책로 주변에는 키 큰 아카시아, 참나무 심지어 덩치 큰 편백나무도 가지가 꺾이거나 뿌리를 드러내고 쓰러져 있다. 들판엔 누렇게 고개 숙인 벼가 곳곳에 쓰러져 있고, 과수원엔 수확 직전의 과일들이 떨어져 나뒹군다. 거름을 지나치게 줘서 키운 농작물은 웃자라서 바람에 쉽사리 쓰러지고, 꼭지에 비해서 과실이 지나치게 크거나 꼭지가 부실해도 잘 떨어진다. 자연의 거센 도전 앞에 여린 식물들의 속살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추석 무렵 17호 태풍 ‘즐라왓’이 한반도로 북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깜짝 놀랐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는 중요한 시기에 태풍이 또 찾아온다 해서 걱정이 앞섰는데 우리나라를 비껴 간다니 마음이 놓인다. 태풍이 우리에게 많은 피해를 주지만 나쁜 영향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뿌리와 줄기, 가지가 자라서 바람에 더 강한 나무가 되게 도와주고, 바다의 해류를 정화시키며 지구의 전체적 온도를 균형 있게 맞춰준다.
우리 학교에는 한부모가정과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9월 22일 저녁 KBS에 방영된 글로벌 성공시대의 주인공인 김태연 회장의 도전정신을 심어주어야겠다. 그녀는 불우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고통과 아픔을 밑거름으로 삼아서 자기의 꿈을 이뤄냈다. 주변에서 불가능하다고 만류하는 일도 끊임없이 도전해 왔기에 미국 100대 우량기업인 실리콘 밸리의 첨단 IT기업 라이트하우스를 이끄는 회장이 되었다. “그도 할 수 있고, 그녀도 할 수 있는데 나는 왜 못해요? 할 수 있어요! Can Do!”라는 구호를 외치며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그녀처럼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 태풍이 몰아쳐 와도 쓰러지지 않고 의연하게 맞서 더욱 강인해지도록 도와주고 싶다. 누군가가 못 견디게 힘들어 할 때 고통을 함께 나누며 더 깊은 사랑으로 품어주고 끝까지 함께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서외남·사천 대방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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