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사회
익명의 사회
  • 이은수
  • 승인 2012.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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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수 기자
최근 들어 ‘버스 패륜남’ 사건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창원의 한 시내버스에서 20대 남성이 노인을 무차별 폭행했다는 글과 사진이 포털사이트와 SNS에 급속도로 유포되면서 사회적 파장이 커졌다. 하지만 버스 운전기사가 경찰조사에서 “맞은 사람은 노인이 아니며 일방적으로 맞은 것이 아니라 서로 폭행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고발성 사건이 인터넷상에 올라와 논란이 된 건 벌써 여러 번째다.

우리 지역에서는 올 초에 ‘진주에 인신매매범이 설친다’는 괴소문이 인터넷 싸이월드 등에 유포됐다. 그리고 지난 8월에는 ‘진주에 울산자매 살인사건 용의자가 나타나 경찰이 검거키 위해 검문을 강화하고 있다’는 괴소문이 트위트에 나돌았다. 그리고 이달 들어서는 ‘마산교도소에서 성폭행범 8명이 집단탈옥해 합성동 일대에 경찰이 깔렸다’는 괴소문을 마산지역의 여고생이 퍼뜨리기도 했다. 이렇듯 무차별적인 괴담이나 허위사실 유포가 도를 넘었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급기야 경찰은 괴담으로 시민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경찰의 수사력이 소모되거나 긴급한 범죄 또는 긴급구조가 필요한 사건사고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인터넷 허위사실 게재·유포행위에 대해 끝까지 추적 검거해 엄정 처벌할 것이라고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인터넷, 트위트·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괴소문·유언비어 등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은 ‘묻지마 범죄’, ‘성폭력’ 등 잇따른 강력사건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악용하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문열은 그의 소설 ‘익명의 섬’에서 현대사회 사람들이 익명성에 의존해 평소 하지 못하는 어떤 일도 익명의 섬 안에 숨어서는 과감하게 행하는 심리를 표현한 바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명(匿名)의 섬이 많아지고 있음을 경계함과 동시에 또 그것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터넷 안에서 벌어지는 익명의 섬에서의 행동도 그 예 중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익명을 통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기부를 한다든지 남모르는 선행을 하는 사례를 전파하는 좋은 예도 얼마든지 있다.

인터넷상의 문제점은 익명의 공간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주장에도 쉽게 사실인 것처럼 퍼져 확대 재생산돼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는데 있다. 이로 인해 특정 개인은 치명적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댄 불신의 사회를 해소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일찍이 ‘진정한 자아는 익명 속에 피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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