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둔 어느 임상병리사의 눈물
추석 앞둔 어느 임상병리사의 눈물
  • 강진성
  • 승인 2012.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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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중앙병원 폐업 그 후…고단한 소송 진행중
◆6개월 만에 전 직원 권고사직=서윤정(가명)씨는 1년 6개월째 실업자로 지내고 있다. 임상병리사였던 그는 병원에서 늘 맡던 약품냄새가 이젠 기억에 나지도 않는다. 진주중앙병원이 지난 2011년 4월말 권고사직을 하자 직장을 잃었다. 서씨뿐만 아니라 간호사, 사무직 등 100여명의 직원이 한꺼번에 실업자가 됐다. 진주시 대안동 옛 진주의료원 자리에 문을 열었던 중앙병원은 무리한 경영으로 6개월 만에 휴업에 들어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직원들은 월급을 받은 때보다 못받은 때가 더 많았다. 직군별로  밀린 임금은 3~4개월에 달했다.

밀린 임금보다 더 힘든 것은 준비할 새도 없이 직장을 잃었다는 절망이었다. 직원 대부분이 타 병원에서 근무하다 중앙병원 개업과 함께 직장을 옮겼다. 서씨는 여러 병원에서 접촉이 왔지만 지인의 권유로 중앙병원에 입사했다. 임금조건도 나쁘지 않은데다 새롭게 시작하는 병원이라 기대도 컸다. “저는 그나마 나은 편이에요. 다른 분은 멀쩡한 병원에서 일하다 옮겼죠. 반년 만에 병원이 그렇게 될지도 모르고 말이죠.” 서씨는 병원이 문을 닫자 소개시켜 준 사람들의 고통이 더 컸다고 전했다.

간호사는 그나마 나았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다른 병원으로 재취업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임상병리사나 사무직의 경우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해오던 일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도 있었다. 서씨는 여러 병원에 이력서를 냈지만 퇴짜를 맞았다. 나이가 많아서 곤란하다는 이유였다.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는 생계비 마련이 막막했다. 결국 살던 집을 팔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다른 직원들도 처지는 비슷했다. 열에 일곱 여덟은 마이너스 통장과 대출을 받고 살아야 했다.

◆100여명 체불임금 지금도 미지급=서씨는 체불된 임금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돈도 돈이지만 사업자들이 직원들을 사지로 내몰고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은 견디기 어려웠다. “제 평생 일 때문에 법적 다툼을 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사실 근로자 권리라는 것조차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죠.” 서씨는 중앙병원 직원들을 대표해 체불임금 청산일을 하고 있다. 노동지청, 법원, 법률구조공단, 세무서, 경찰서 등 안 다닌 곳이 없다. 1년 6개월을 쫓아다니면서 서씨는 사회의 추한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고 말한다. 가진 자들의 뻔뻔함, 약자의 한계 등 냉혹한 현실이 그를 더 아프게 했다. 눈시울을 적신 그는 “꿈에서도 그 사람들이 나온다. 어서 빨리 이 싸움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병원이 문을 닫은 직후 직원들이 받지 못한 임금은 100여명 총12억원에 달했다. 정부가 우선 밀린 임금을 지급하고 업체에 청구하는 ‘체당금 제도’가 있지만 중앙병원이 직원들을 사직시키고 13개월 만에 폐업하면서(사직 이후 12개월 이내에 신청 가능) 1개월이 초과돼 자격조건이 안됐다. 직원들은 병원측이 체당금을 못 받게 고의적으로 시간을 끌어 온 것으로 의심했지만 해결방법이 없었다.

서씨는 법적공방을 통해 병원 책임자들의 재산을 처분해 임금을 청산하는 지루한 싸움을 했다. 체불임금 중 5억원은 병원의 보험급여금과 A원장 아파트 경매로 청산했다. 이 돈을 받는 데만 10개월이 걸렸다. 남은 6억원가량의 돈을 받기 위해 지난달 말 B원장의 아파트와 병원토지 지분이 경매에 부쳐졌다. 이 재산만 낙찰되면 모든 체불임금이 청산된다. 낙찰금 지급까지 수개월이 더 걸리지만 1년 넘게 끌어온 싸움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경매 당일 병원토지 공동소유자인 C이사장이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면서 B원장의 아파트와 토지 모두 경매가 중단됐다. 희망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고통받는 직원·사과없는 병원=병원 책임자들은 무심했다. 임금도 못준 채 병원문을 닫았지만 누구 하나 직원들에게 사과하는 사람이 없었다.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뛰어야 하는 것도 피해자인 직원 몫이었다. 서씨는 직원들을 대신해 소송서류를 들고 다녔다. 사실상 직장을 가진 상태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가 임금을 다른 직원에 비해 많이 받는다거나 우선적으로 받지도 않는다. 다만 서류준비와 교통비 명목으로 십시일반 직원들로부터 소액의 경비를 받은 게 전부다.

현재 중앙병원 직원에게 남아 있는 체불임금은 1인당 500만~600만원. 적다면 적을 수 있지만 누군가엔 몇 개월을 버틸 수 있는 돈이다. 특히 은행 빚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중앙병원 출신 직원들에겐 포기할 수 없는 금액이다. 빚더미  속에 어렵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 심한 스트레스를 받다 암투병하고 있다는 동료들의 소식을 접하면 서씨의 마음이 무겁다.

소송이 해결돼 홀가분한 명절을 맞고 싶다는 서씨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병원은 그동안 직원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줬어요. 힘들어 하는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받아내야죠.” 강진성기자 news24@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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