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不信)의 시대
불신(不信)의 시대
  • 곽동민
  • 승인 2012.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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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민 기자

얼마 전 진주에서 한 40대 남성이 굴착기로 경찰서 지구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전국 주요 언론사들의 보도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알려진 이 사건은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것만으로도 놀랄 일일진데 바로 다음날 인천에서도 음주운전 사고처리에 불만을 품은 50대가 차를 몰아 파출소로 돌진했다. 이에 앞선 지난 8월9일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조사를 받은 한 남성이 술에 취한재 차를 몰아 경기경찰청 정문을 들이받은 사례도 있다.

이처럼 항의성 폭력에 시달리는 것은 비단 경찰서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거제에서 건축심의 지연에 반발한 건설업체 대표가 시청을 찾아 ‘돈다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돈을 주지 않아 허가를 내주지 않느냐’며 현금 1억원을 사무실 테이블에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건설업자는 사업계획 승인을 위해 이미 지난 6월에 미비사항을 모두 보완했음에도 시청에서 관련 심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의 주장대로 거제시의 건축 인·허가 과정에 금품이 오갔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경찰조사가 끝나봐야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 깊이 새겨진 불신의 그늘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국민이 국가를 향해 극단적인 방법으로 항의하거나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요즘의 세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권력, 행정을 우습게 보는 현대의 풍조가 만연한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국가가 법령에 의해 규정한 질서와 규칙을 경시하는 행동은 결국 사회 전체의 안녕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술김에, 홧김에, 폭력에 취한 듯 자신의 감정을 아무렇게나 터트려 내는 현대인들의 의식도 큰 문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공직자 비리사건 등으로 인해 오랜 시간 쌓여온 불신 탓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직사회는 ‘청렴 선포식’ 등을 통해 쇄신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크고 작은 비리사건이 알려질 때마다 느끼는 씁쓸함은 골 깊은 불신이라는 감정으로 고착된다.

대한민국에는 소명의식을 가진 많은 공직자들이 있을 것이다. 설사 그저 직업으로 삼아 삶을 살아내는 한 방편으로 생각하는 이가 절대 다수라 할지라도 규정과 원칙을 지키며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믿고 있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가족을 위해, 국민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공직자들의 속앓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불신의 시대가 만들어낸 대한민국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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