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문산읍‘용줄 겨루기’
진주 문산읍‘용줄 겨루기’
  • 경남일보
  • 승인 2012.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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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전 김해부시장)

지난 7월 장마 이후 한동안 폭염이 계속된 적이 있다. 이 폭염으로 4대강을 비롯한 큰 하천에서는 녹조발생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였다. 이의 원인과 책임을 둘러싸고 논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들도 연일 계속된 폭우와 두 번의 태풍이 지나간 뒤 녹조현상과 함께 해소되고 일시에 조용해지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보니 고향 문산읍의 ‘용줄겨루기’ 풍습이 머리를 스친다.

용줄 겨루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60년대까지 고향 문산읍에서 행해진 주민의 집단 기우의식(祈雨儀式)이다. 산업화와 도시화 물결로 기억에서 멀어져 현재는 빛을 보지 못한 채 잠자고 있지만, 성인이 된 지금 그때를 회상해보니 너무도 자랑스럽고 가슴 벅찬 축제였기에 유년기에 받았던 감동을 새삼 되살려 보면서 소개하고자 한다.

용줄 겨루기는 긴 세월 동안 가뭄에 지쳐 있는 읍민들의 머릿속에서 가뭄을 잊도록 하기 위한 문화행사로 문산인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축제는 용줄 땋기에서 겨루기까지 오랜 기간 전 읍민이 함께 동참하여 가뭄으로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절망의 나락에서 주민들을 희망의 빛이 충만한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서 단결시킨 지혜의 축제 한마당이었다.

문산천의 중간지점을 경계로 상·하류로 나누어 윗동네, 아랫동네가 각각의 장소에 모여 한 달여 동안 폭염과 갈증도 잊은 채 대형 용줄을 만들기 위해 작은 줄을 땋던 정겨운 광경이 생생하다. 용줄을 땋는 동안 타들어가는 논밭의 모습을 머리에서 지우기 위해 용줄 땋기에만 열중하던 그런 모습은 절망과 희망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농민들의 애절한 몸부림을 예술적인 힘으로 승화시켰다. 그것이 바로 문산인이 빚어낸 용줄 겨루기 축제의 가장 큰 의의라고 생각한다.

한 달여간 작은 줄을 땋아 전체를 한 묶음으로 하여 새끼줄로 촘촘히 감아 용줄을 완성시킨다. 규모는 길이가 한쪽이 100여m, 굵기는 한편에 2명씩의 응원단장이 어깨에 맨 용줄 위에서 응원기를 흔들고 뛰어다닐 정도였으니 그 줄의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용줄 겨루기 출정식을 갖는 날에는 용줄 위에서 깃발을 들고 아랫마을 응원단장은 윗마을을 향해 “아랫마을 쫄쫄래 쫄쫄래야”하며 신명을 돋우었다. 윗마을은 아랫마을을 향해 “웃마을 쫄쫄래 쫄쫄래야”하는 응원단장의 앞소리에 따라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질렀다. 남산과 뒷산이 가깝게 마주하고 있어 동네 전체가 쩌렁쩌렁한 함성의 메아리에 묻히면 읍민들 모두는 그 들뜬 분위기를 만끽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기충천한 읍민들은 용줄 겨루기 장소인 문산천으로 그 굵은 용줄을 메고 이동한다.

용줄 겨루기 당일은 축제의 클라이막스다. 문산천은 가뭄으로 얕은 물에 녹조가 왕성하던 기간도 잠시, 하천에는 물 한 방울마저도 다 말라버리고 자갈마당으로 변해 용줄 겨루기에는 너무도 안성맞춤이다. 살기도 어려운데 가뭄마저 심하니 먹을거리도 그렇게 풍족하지 못했지만 이날은 술과 고구마 말린 빼때기죽을 비롯한 간식거리를 서로 내와 음식이 넘쳐난다.

드디어 용머리에 비녀를 꽂고 한 판의 축제는 절정에 달하고, 그토록 오랜 기간 줄을 땋고 출정식을 하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신명나는 용줄 겨루기 한판 축제를 벌이니 하늘도 감명하였는가. 어디선가 짙은 구름이 밀려오고 이윽고 그토록 기다리던 비는 거짓말같이 쏟아지고야 만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지자 축제에 참가한 읍민 모두는 하늘을 향해 마음속 깊이 감사를 드린다. 올 한 해 농사는 수확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내년 농사는 풍년이 들기를 모두들 한마음이 되어 기원한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들이라 너무도 아름답고 자랑스럽다.

50여 년간 잠들어 있는 용줄 겨루기 축제를 복원하여 그 속에 살아 숨쉬는 뜨거운 혼을 일깨워 도시화 과정에 일어나는 고향의 다양한 어려움의 해소와 미래를 향한 발전 동력으로 되살려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박종규 (전 김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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