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90>
오늘의 저편 <190>
  • 경남일보
  • 승인 2012.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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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공회전

 알찬 생각이 알찬 결과로만 이어진다면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일이 없을 것이다. 꿈이 있어서 세상이 명랑하게 돌아가는 것인지 꿈이 있어서 헛되고 맹랑한 일이 파생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피난길에 오른 배불뚝이가 있을 거야.’

만삭인 여자를 찾으러 가던 화성댁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때까치 몇 마리가 그녀의 머리 위로 꺅꺅거리며 지나갔다.

 

 이른 아침 핫저고리를 단단히 껴입은 화성댁은 뒷산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얼굴을 감싼 광목보자기 사이로 빨갛게 달아오른 코가 보였다. 입에선 허연 입김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산중턱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잠시 허리를 폈다. 여기서 산꼭대기까지는 길도 없이 가파르기만 해서 사람들은 아예 오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에 아려오는 귀를 손바닥으로 문질러댔다. 

 산을 타기 위해 화성댁은 또 허리를 기역자로 굽혔다. 불현듯 산의 왼 겨드랑이로 눈을 돌렸다가 바로하며 눈에 힘을 불끈 주었다. 턱에 받쳐오는 숨을 헉헉거리면서 잘도 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지지대고개로 가고 있었다. 읍내 쪽으로 가면 길이 좋겠지만 한참을 둘러가야

 했다. 그렇더라도 지난번처럼 코쟁이와 맞부딪칠까 봐 그곳으론 발길이 당겨지지 않았다.

 ‘피난길에 오른 배불뚝이가 있을 거야.’

 만삭인 여자를 찾으러 가던 화성댁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때까치 몇 마리가 그녀의 머리 위로 꺅꺅거리며 지나갔다. 싫은 기색 하지 않고  멀어져가는 새들을 바라보았다. 

 산꼭대기가 가까워지자 피난민들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뜻 모를 동요가 일어나는 가슴을 누르며 화성댁은 바짝 긴장했다. 주제모를 피돌기가 빨라지는 것을 느낀 그녀는 바짝 긴장했다. 몸을 숨겨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잎을 다 떨어버린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엉성하게 엉겨 있었다.

 화성댁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대로 정상에 올라가다간 그녀 자신이 노출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뭐지? 설마?’ 

 오른쪽으로 목을 막 돌리던 그녀는 어느 한 곳을 주시하며 발걸음을 당겨갔다.

 ‘쯧쯧쯧??.’

 아직 고추밖에 안 되어 보이던 그 소년 인민군이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는 것을 본 화성댁은 혀부터 찼다. 

 ‘으~음, 으~음, 이래 죽어버린 줄도 모르고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

그녀의 입에선 신음소리가 섞인 넋두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제나저제나 자식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그 부모의 마음이 가슴으로 느껴지고 있어서였다.

 ‘흥, 흥, 염병할 놈의 세상.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고 뒈질 놈들! 멀쩡한 남의 자식들 못 잡아먹어서 전쟁을 일으키고 지랄이냐?’

 왜인들이 남의 나라에 와서 지랄 발광하던 그때부터 시체가 되어 돌아오는 젊은이들을 하도 많이 봐버렸던 탓일까? 죽어있는 소년을 보면서도 화성댁은 별 다른 충격에 휩싸이지 않았다.

 ‘땅이 녹으면 묻어주마.’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아이에게 말하듯 하며 낙엽을 손으로 긁어 시체 위를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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